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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식 목사님의 런던이야기(사찰에 관하여)[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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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영대
댓글 0건 조회 2,033회 작성일 09-09-3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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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bia.net/xe/?document_srl=32486&mid=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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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직 퍽……!

바로 지난 주일 오후였다. 한인 예배를 준비하려고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예배실 퓨즈가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30분 후면 시작하게 되는 데 순간적으로 난감했다. 나는 이것 저것 준비할 일도 있고 해서 큰 애더러 교회 관리인 (Caretaker)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아빠! 그런데 그 아저씨가 좀 짜증을 부리네요.”
“아니 왜? 그 분이 교회 관리인인데.”
“주일 오후에 자기는 근무 안 한대요.”
“아니, 교회 관리인이 주일에 일을 안 한다고?”

수리가 끝나자 평소에는 늘 친절하게 나를 대해주던 그 관리인이 정중하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나와 아내를 쳐다 보지도 않은 채 퉁명스럽게 ‘괜찮습니다’ 라며 가버리는 게 아닌가! 물론 주중에 다시 만났을 때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나를 맞아 주었지만 말이다.

<사찰 집사>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코 ‘조집사’님이시다. 이미 고인이 되신 그 분은 한 마디로 믿음의 용사요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셨다. 그로부터 신앙적 영향과 사랑을 받고 자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그의 장래식이 증명해준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애도를 표한 수 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여러 선교 기관의 리더들이 조집사님의 열매들이다. 부족한 나도 그 분이 뿌린 믿음의 열매중 하나라고 증거하고 싶다.

그녀는 참으로 몸이 왜소한 여성이었다. 한 쪽 눈은 실명상태였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천식으로 고생하였다. 한 번 시작되면 옆에서 쳐다보기가 민망하리만큼 처절하게 기침을 하곤 했던 그녀의 모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녀는 교회 사찰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또 작은 체구로 그리 작지 않은 교회 마당과 본당, 기도실과 교육관을 쓸고 닦는 틈틈이 성경을 읽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분이었다. 비록 직분은 사찰이었으나 영적인 영향력은 대단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여호수아에 대하여 또 기드온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시던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몹시도 그립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신학교를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다 그녀의 기도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끼친 신앙적 영향은 담임목사님이나 학생회 지도 목사님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내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많은 이들의 ‘믿음의 어머니’셨다. 오직 믿음 하나로 수 많은 아들과 딸을 낳고 기른 분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가 감당한 사찰이라는 직분은 참 묘한 데가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늘24시간 비상대기 및 근무체제 하에서 생활하셨고 교회 시설 관리와 관련해서는 거의 무한 책임을 지신 듯 하다. 거기다 이 일 저 일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팔방미인 역할도 감당하셔야만 했던 것 같다. 문자 그대로 교회의 ‘올 라운드 플레이어’ 였다.

그녀로부터 신앙적 자양분을 공급받았던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태산 같은 존재요 거인이었지만 그녀는 끝내 사찰이었다. 책임은 많고 권한은 적었으며, 가끔은 인격적으로 대우받기보다는 교회에서 먹고 사는 존재로 치부될 때도 있었다. 사생활 보호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고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근로 기준법의 보호도 거의 받지 못하신 듯 하다. 모르긴 해도 우리 믿음의 자녀들 몰래 흘려야 했을 눈물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이후 내가 사찰과 사무원이 없는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동안 깨달은 것이다. 엄동설한에 교회 연탄불 꺼먹었다고 혼도 나보고, 화장실 청소가 부실하다고 꾸지람도 듣고, 이 일 저 일 때문에 오해도 받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교회 사찰이라는 신분은 때로는 인권의 사각지대다. 인격과 자존심은 저 만치 모셔놓아야 될 때가 많다. 또한 ‘주의 일’은 제일 많이 하면서도 정당한 보상과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별히 사찰 자녀들이 교회 때문에 남몰래 겪는 아픔은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친히 닦아 주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동안 영국 Trinity Church에서 색다르게 겪은 일들이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 참 인상 깊은 일이 바로 ‘사찰’ 업무와 관련된다. 여기서는 Caretaker라는 말로 불리는데 역할은 한국 교회의 사찰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질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현재 Trinity Church에서는 영국 해군 상사 출신 한 분이 그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필자의 아내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교회 자선용 식당 매니저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 Caretaker에게 일정한 임금을 지불하며 주택을 제공하고, 주민세와 가스 및 전기료도 납부해준다. 전화 사용료는 절반을 교회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사찰과 다소 다른 점은 교회가 철저히 노동법에 의거하여 그를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65세에 은퇴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정부로부터 연금혜택을 받게 된다. 주 5일 근무를 보장하기 때문에 주일 점심 시간부터 화요일 오전까지는 교회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그날 오후 그가 짜증을 낸 것이다. 법적으로 쉬는 날 일을 부탁했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와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벽기도부터 철야기도까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한국 교회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다. 그가 교회에서 제일 많은 일을 하지만 교인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가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만약 그가 교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교회는 당장 노동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최소 연 4주간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물론 휴가 중에도 임금은 정상적으로 지불 받는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은 ‘Gardening Party’라는 것을 갖고 있는 데 이는 그럴 듯한 이름과는 달리 교인들이 그냥 교회 주변을 청소하고 가든을 정비하는 날이다. 한국 같으면 단연코 사찰이 나와서 이 일 저 일에 관여하게 되겠지만 Caretaker는 이 일과도 역시 전혀 무관하다. 지난 4년이 넘도록 그의 집 주변을 쓸고 청소한 사람은 바로 이 필자인데 여태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들은 적 없고 자기 집에 불러서 차 한 잔 대접해주려 한 적도 없었다. 초대받지 않으면 남의 집 문턱도 함부로 밟지 않는 이 나라 특성상 그 Caretaker의 사생활은 철저히 보호된다. 나는 그의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직도 상상을 못하겠다.

나는 그와 아내 그리고 경찰관으로 근무중인 그의 아들이 교인들에게 굽실거리거나 반대로 교인들이 그들을 막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국가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할은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교회를 관리하는 일이다. 따라서 믿음의 용장이 될 필요도 없고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어야 할 의무도 없다. 물론 둘 다를 겸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일이 되면 10명의 Deacon들과 기타 봉사자들은 예배 준비하고 정리하느라 발바닥에 땀이 나는데 Caretaker 부부는 그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영 보이지를 않는다.

<교회와 노동법>

한국 교회에서는 ‘주의 일’ 혹은 ‘믿음으로 하는 봉사’라는 대의명분이 활개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최소한의 노동법과 인권법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사찰만 그런가? 대다수의 담임 목사들 뿐만 아니라 부교역자들, 교육전도사들과 특히 심방전도사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나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어느 중소 도시의 교회 담임 목회자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된 적이 있다. 여기서는 라는 제도가 있어서 최소 두 주 보통은 4주의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해고를 통보해야 하며 해고 이유도 명확해야 한다. 부당 해고는 법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완전히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는데 퇴직금은 구경도 못했으며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 송별 인사도 못한 채 죄인 마냥 쫓겨난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로부터 약 8년 후에 비공식적인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한 없이 슬프다.

지금은 필자의 아내가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약 3년 전 내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자선용 식당 주방장 보조로 들어갈 때 교회와 나는 ‘계약서’에 상호 사인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주당 10시간 일하는 파트 타임인데도 노동법에 의거한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이다. 한 해에 4주간의 유급 휴가를 갈 수 있고, 일을 그만 두려면 최소 4주 전에 매니저에게 를 주어야 하며, 상호 불만이 있으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함께 해결하고, 결정적인 하자가 없는 한 해고할 수 없다는 문서에 사인을 한 그 서류를 나는 지금도 기념으로 잘 보관하고 있다.

필자가 짧은 영국 교회 생활에서 느끼는 점은 교회 일은 은혜와 사랑으로 하는 것임과 동시에 <법>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은혜와 사랑이 건강한 노동법을 거스른다면 그것은 성서적인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올 해 여기는 5월 7일(월)이 노동절 (May Day)이다. 주중에 쉬게 될 경우에는 월요일로 조정을 하여 연휴를 주기 때문이다. 목회자와 교회 직원들이 일반적 개념의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노동법과 무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교회가 일반 회사나 기업체보다도 더욱 사람의 인권과 가치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혜와 믿음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주의 일이라는 말은 노동법을 포함할 때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이는 종교적 폭력과 착취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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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중에서 하나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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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xe/32499제 아내의 모교회는 서울에 있어요.
그 교회는 비교적 부자들이 많지요.
자기 돈이 얼마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요.

어느 분이 그 곳에 사찰 집사로 수 년간 일을 하셨답니다.
교인들은 그 분 가정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폈고요.

그 분은 사찰 일을 하면서 신학을 하셨습니다.
물론 등록금은 교회에서 다 해결해 주었지요.
그리고 집사님은 마침내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그 분이 개척을 하시자 그 동안 섬긴 교회는 풍성한 개척 자금을
대 주었고 지금도 때마다 철마다 교우들이 그 목사님 교회를
찾아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답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미담사례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땀흘리고 일한 만큼 댓가를 지불해 주는 교회
그리고 일 하는 분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그런 교회가
날로 날로 많아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은 파격적인 사랑은 능하지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제도를 만드는 데에는
그리 민첩한 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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