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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바라기 이지선 자매님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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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영대
댓글 0건 조회 2,401회 작성일 09-11-21 17:41

본문

?http://www.ezsun.net/? <= 이지선 자매님의 홈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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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의 이지선 자매의 증명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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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 31살의 그녀는 너무나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고 끝내 이루어 냅니다.


뉴욕 마라톤 풀코스 7시간 22분... 완주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2000년 7월달 주일 저녁에 도서관에서 오빠와 돌아오던중 음주운전차량에 의하여 교통사고를 당한 현장에서 55%의 중화상을 입고 살아돌아온 그녀! ?온몸화상으로 근육과 심줄 인대들이 오그라들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을터인데도 화상직후 사지에서 돌아온것 처럼 끝내 이기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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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화상\' 이지선, 뉴욕마라톤 나선 이유는 미디어다음 ??

2009.10.31 (토) 오후 1:36
원래 격렬한 운동과는 거리가 있었고, 대학재학중이던 2000년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40여차례 수술을 받은...이지선씨 옆에는 5명의 장애인 달림이들이 함께 한다. 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에스 오일의 후원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머니투데이 >?국제 |?김준형기자


“재활병원 위해 뛰었어요!” 이지선씨 등 한국 장애인 5명 뉴욕마라톤 참가 미디어다음 ??

2009.11.01 (일) 오후 7:43
2000년 7월 대학 4학년 때 교통사고로 전신에 55% 화상을 입은 뒤 40여 차례 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한 이지선(31)씨...김황태씨는 이지선씨와 수개월 동안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함께 있었다. 그는 마라톤 완주 경험만 33번이고, 전국 체전... 국민일보 >?사회 |?김명호기자




뉴욕마라톤의 우승자는 여러분입니다 ??

2009.11.10 (화) 오전 9:37
이씨는 2000년 대학4학년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차로 귀가하다 음주차량의 추돌사고로 전신화상을...이지선씨가 마라톤에 대비해 운동연습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과다한 체력소모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알수 없었습니다.... 온뉴스 >?스포츠




‘지선아 사랑해’ 뉴욕마라톤 7시간22분 감동 완주 미디어다음 ??

2009.11.02 (월) 오후 2:09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이 해냈다. 차량 화재로 전신화상을 입고 수십 차례 수술의 고통을 극복해 많은 감동을 안긴 이지선 씨(31)가 또 한번 감동의 드라마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이날의 감동은 그 이를... 뉴시스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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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광장]만취운전 6중 추돌사고 (2000.7.30)


⊙앵커: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일가에서 서울 후암동 42살 김 모 씨가 만취 상태에서 갤로퍼를 몰다가 마티즈 승용차 등 6대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경기도 안양시 갈산동 23살 이 모씨가 온몸에 2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 김 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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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30일..
아무렇지 않게.. 남의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뉴스속 \'이 모씨\'가 되었습니다

그 엄청나고 무서운 불속에서 건지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자기 팔을 태우면서까지 동생을 구해낸
오빠의 용감함과 사랑에 감사하며....

이제 덤으로 사는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합니다.


밑의 주소를 입력하시면
오빠와 제가 탔던 차가 폭발한 화면을 볼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plaza/20000731/20000731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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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30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오빠와 나는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앉았지만 오빠도 나도 무언지 모를 기분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 갈까말까, 저녁을 먹을까말까, 만나서 같이 먹을까말까...별것도 아닌 일에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습니다.

밤 10시 10분에 학교 후문에서 오빠를 만났습니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날이면 늘 거기서, 그시간에 만나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왔었습니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오빠를 만나 차에 탔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후로 아주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이 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아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신 씁니다.)

저는 내일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하고, 학원도 가야하고, 과외도 해야하는데 어떻게 약속을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용산쯤 와서 신호등이 바뀌어 차가 섰습니다. 오빠가 내 쪽을 보며 "그래서 누구를 만난다구?"라고 말했고 뒤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그때 오빠가 "어디서 사고나는가 보다"하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미 그 사고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빠, 지금이 몇년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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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대기하고 정지해 있던 우리차를 향해 술을 마시고 이미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치려던 갤로퍼가 돌진해와서 박았고, 우리차는 그 충격으로 앞차와 충돌하고, 또다시 중앙선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충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차가 두바퀴 돌게 되었고 다시 그 갤로퍼에 가서 박혔습니다.

오빠가 정신을 차린 것은 차가 빙글빙글 돌고있을 때였습니다.??며칠전 여행에서 오빠와 내가 탔던 \'놀이기구를 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머리 뒷쪽이 후끈하여 일어나 옆을 보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열려진 창문(오빠는 늘 창문을 열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으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빠져나왔고, 조수석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나 동생이 그 옆으로 떨어졌는가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지선이는 거기 없었습니다.

차 뒤쪽을 보니 흰양말을 신은 제 다리가 보였다고 합니다.??갤로퍼와 우리차 사이에 다리가 걸쳐져 있었고 이미 상체는 불길이었습니다. 충돌과 함께 연료통이 터졌고, 차가 몇바퀴 돌면서 불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불위로 떨어졌고,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저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오빠가 저를 꺼내려고 제 두다리를 잡고 끌어당겨 보았다고 합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체를 위로 띄우듯 당겨 저를 꺼내었습니다.

오빠는 불길에 휩싸인 동생을 보고 급한 마음에 불을 끄려고 저를 안았습니다. 이때 오빠 팔에도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피부가 타서 벗겨졌습니다. 그래서 오빠는 지혜롭게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불을 다 껐을때쯤 한 택시기사 아저씨가 수건을 들고 와 도와주었을 뿐, 큰 사고를 구경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빨리 비켜요! 차 터져요!\'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바삐 저를 안아 몇 발자국 옮겼을때 오빠와 제가 탔던 차가 폭발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2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모든일이, 이 엄청난 일이 \'순간\'에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정신이 든 저는 오빠에게
\'오빠,지금이 몇년도야? 2000년도야?\'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꿈이라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무의식의 지선이는 꿈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오빠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 말을 합니다.
\'오빠, 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착한 우리오빠는 제가 아파서 고통받을 때마다 아마 이말을 되뇌였을것입니다. 자신이 괜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닌가...생각할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빠의 슬픈 눈에서, 어쩔땐 눈물을 참기위해 웃는 그 슬픈 웃음 에서 그 마음을 읽어낼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오빠와 함께 TV를 보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애인이 타고있던 차에 불이 나서 밖에 있던 여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울부짓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던 오빠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렇게 밖에서 보고만 있어야 되는건데 괜히 꺼내가지구 이 고생을 시킨다. 그치? 니가 발을 내밀고 있어서 그래~ 으이구~\'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요즘에 살맛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백번잘꺼냈지!\'라고 했지요.

오빠가 참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지선이를 구해낸 것이 실수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일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계속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미 지선이 안에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나타내실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은 2001년도 입니다. 저는 날마다 날마다 꿈처럼 행복합니다.



??지선아,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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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가 오고, 지선이와 오빠는 가까운 용산중대부속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빠와 지선이가 용산 전쟁기념관옆 신호대기에 서게된 후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더 이상 평화로운 주일밤에 집으로 향하던 남매가 아니었습니다. 검게 탄 동생, 맨발에 반바지만 입은 검게 그을린 오빠, 그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지선이에게 의사들이 달려들었지만 별 방도가 없었습니다. 잠시 기절했던 지선이는 갑자기 일어나 뜨겁다고 좀 치료해달라고 소리지르더니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의사들이 오빠의 팔을 치료하려고 하자 오빠는 자기는 괜찮다며 동생을 봐달라고 했지만 동생은 지금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며 맥박조차 잡히지 않는다고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게 없으니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지선이에게 산소호흡기가 끼워지고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남매는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앰뷸런스 안에서 오빠는 끝도없이 주기도문만 외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오빠는 정말이지 한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지선이를 안고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주기도문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다 지선이에게 마지막....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선아 잘가.
지선아 너 너무나 좋은 딸이었고 동생이었어.
누구보다도 예쁘게 착하게 살았고 그렇게 평생 널 잊지 않을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조금만 기다려. 지선아 잘가"
오빠가 그렇게 인사를 했을 때 지선이는 그때까지 계속 너무나 괴롭게 내던 신음소리를 그쳤습니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호흡조차 잡히지 않았고 머리 뒤통수는 다 찢어져 너덜거렸으며, 이미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안에 고기 탄 냄새가 진동하였고 얼굴은 새카맣게 타서 누군지 알아볼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사가 오빠에게 치료하러 치료실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일지 모르니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오빠가 다시 인사를 하자 지선이는 부르르 떨던 다리를 멈추었습니다. 오빠의 인사를 받는 듯하였습니다.

잠시후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빠가 \'지선아, 아빠야. 아빠가 왔어. 괜찮을꺼야\'라고 말했더니 의식이 없다던 지선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지선이를 보고 서 있을수도 없었고, 딸의 탄냄새를 맡고 있을수도 없었습니다. 그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정말 앉을수도 설수도 없는 상황, 엄마는 병원바닥에서 그냥 굴렀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우리 지선이 교통사고 났어. 지선이 죽는대"라고 가깝게 지내는 권사님께 전화한통을 했고, 곧 이모와 삼촌들, 목사님들, 전도사님, 그리고 권사님 집사님들이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아빠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고, 가망없어 보이는 지선이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지선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아빠는 지선이가 의식이 있다며 의사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지선이의 머리를 깎고 찢어진 뒷통수를 꼬매고, 응급치료를 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CT촬영을 할수 있었고,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새벽 4시, 폐에 가스가 찼기 때문에 그것을 빼내는 호스를 옆구리에 박고 지선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아직 살았다고 할 수 없으며 아주 위험한 상태니 계속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선이는 지옥같은 죽음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를 위한 믿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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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사고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달려오셨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엉망이 되어버린 지선이와 함께 기도를 하신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목사님은 한 20분을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 채 앉아계셨습니다. 사선을 넘는 고난을 겪으셨던 목사님도 이 기가막힌 상황에 차마 엄마를 위로할수도, 지선이가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시기가 어려우셨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 때를 위한 믿음이라, 이 사건을 위한 믿음이라.\'

십년이 넘게 하나님을 믿어온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일이.. 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간의 신앙생활이, 지금 가진 믿음이 이 어려운 때를 이겨나가기 위한 것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가족은 그럴때마다 이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되었으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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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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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고 며칠동안은 기억이 없는데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는 무렵의 기억인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진 않지만 누군지 모를 여러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습지만 저는 외계인에게 잡혀서 우주선을 타고 실험을 당하고 있는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이게 뭐지? 꿈인가? 자고있나? 이게 뭐지? \'

그러다가
\'누가 구급차좀 불러주세요! 지선아 괜찮아. 괜찮을꺼야.\'
라는 정말이지 너무나 다급하게 울부짓는??오빠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사고현장의 소리가.. 소리만이 제 머리속에 계속 떠올랐습니다.
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꿈이 아닌 일이, 내게 뭔가 아주 큰 일이 일어난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고구나.. 사고가 났구나...내가 다친건가봐\'
그 때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무서운 그 기분...
무섭다는 말한마디로는 표현이 안되는 느낌...공포였습니다.
결코 되돌아 갈수 없는 길을 지나온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으려고했었습니다.
얼마나 다쳤는지 모를때였는데, 정신이 왔다갔다 할때였는데 어떻게 그런 못된 생각까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보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몸에 무언가 줄이 달려있어 그걸 뽑으면 죽을까 싶어서 발가락으로 당겨서 뺀 것이 나중에 알고보니 겨우 소변을 받아내는 줄이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지요...

이렇게 내 힘으로 불가능하자 가스펠송을 부르기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가운데 계신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뒤에 가사는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간다고..그렇게 천국으로 하나님께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르고 또 부르고 정신이 있는 동안은 계속 불렀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하나님께 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찬양을 하고 있을때 교회 식구들 ,시온성가대 또 사랑하는 식구들의 간절한 기도가, 뿌려진 눈물이, 안타까운 마음들이 하늘보좌를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지선이
끊임없이 불렀던 찬양 가사처럼
고통가운데 주님을 만나
이렇게 살아서.. 변함 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고,
전하고 증거하며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라고...
하나님은 제게 그런 계획이 있으셨나 봅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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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 며칠간 저는 의식이 있었다가 없어지고...를??계속 반복했습니다.
타버린 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여 붕대로 싼 얼굴에 구멍이라고는 눈, 코, 입밖에 없는데 그곳으로까지 부어올라 저는 정말 쳐다보기 어려울만큼 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면회시간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온몸이 부어올라 볼수도 말할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가 발을 묶은 끈을 풀어주어 발로 글씨를 썼습니다.

"여기 어디?"
"병원이야. 중환자실이야. 지선이가 다쳤어...."
"언제 만나?"

엄마와의 첫 대화는 그러했습니다.
얼마전 친척분이 중환자실에 계셨던 적이 있어서 면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엄마는 하루에 세 번, 삼십분씩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면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정작 엄마를 만날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그것이 중환자실에서 있는 동안 화상치료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저에겐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사고당시 눈에 콘텍트렌즈를 끼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는데 눈안에서 렌즈가 녹아버린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이젠 지선이가 살아도 앞을 볼 수 없게되는 것은 아닐까... 온가족들은 걱정하였습니다.

몸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에 렌즈가 녹았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는 며칠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사고난지 4일째 되던날, 붓기가 조금 가라앉으면서 전혀 녹지않은 렌즈를 꺼낼수 있었고 그것을 간호사님께서 엄마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저의 눈을 지켜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심한 화상의 경우 대개 일주일이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저를 살 가망이 없는 환자로 분류하여 간호스테이션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두었습니다.
제가 2층 중환자실에 있던 40일간, 그 침대에 있었던 환자중에 살아난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일주일이 생사의 고비라는 그동안...
폐에 차있던 가스를 제거하는 관도 빼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의사선생님이 내 가슴을 두드리며 "이제 숨 쉴수 있지? 혼자서 숨 쉴수 있지?"라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떡이자 목 깊숙히 박혀있던 산소튜브를 뽑아내었습니다. 그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엄마와 말도 합니다.
저는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살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작은 시작에 불과한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notice] My Story를 쓰는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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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zsun.net


제가 \'이만큼~고생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여러분을 울리기 위해서, 동정을 받기위해서 쓰는 것은 더더욱아닙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누구도 살수 있을거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살리셨고 또 사랑하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제 이야기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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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page?????http://www.ezsun.net
subject<2003.4.20> 부활절 저녁예배. 삼일교회에서





지선이네가 들어가 앉을 자리도 없이 정말 꽉차버린 숙대강당.
강대상 주위까지 빼곡히 들어앉은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오히려 지선이를 놀라게해지요,

이날 전병욱 목사님이 간증이 끝나고 선물과 꽃다발을 주셨는데
이 장면은 지선이 중환자실에 있을때 실제로 꿈꾸었던 장면과 거의 같았답니다.
꿈에서 목사님은 누구신지 몰랐지만...
앉은 자리와 행동과 분위기, 느낌이 꼭같았죠,

꿈을 현실로 보여주시는 이 소름끼치게 감사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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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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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순간의 사고와 7개월 간의 입원과 11차례의 수술. 3년여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지금, 화상에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선아, 사랑해"라고. 어떤 고난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태어나게 하기도 한다. 그녀에게 삶은 죽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었다. 그 \'귀한 삶\'의 소중함과 희망의 힘으로 그녀는 당당할 수 있었다.

"사는 것은, 살아남는 것은 죽는 것보다 훨씬… 천배 만배는 힘들었습니다. 그 귀한 삶을 동정하지 마십시오. 넘겨짚지도 마시고 오해하지도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세상에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나 사람을 죽이는 것인지, 희망은 얼마나 큰 힘이 있는 것인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정말 세상에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라는 그녀의 말에 우리가 가졌던 편견들은 여지없이 부서진다. 그녀의 외모가 우리와 다른 것은 단지 \'다름\'일 뿐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측은함이나 동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아무리 힘들 때에도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네게 희망이 있다\'는 하나님 말씀이 들려와 참을 수 있었어요. 분명히 저를 살려주신 섭리가 있으실테니까요."는 그녀의 말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 또한 알 수 있다."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해도, 지금이 더 좋"기 때문에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라는 그녀의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사고 나기 전 그 자리로 되돌려준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제 대답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또 누군가는 진짜냐고, 진심이냐고 묻겠지만, 저는 지금 이 모습이라도
행복하고 기쁩니다. 지금 이 모습의 저도 지선이고 예전의 지선이도 저니까요.
거울 속의 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넵니다. “안녕, 이지선!”
거울 속의 새 지선이도 인사를 합니다.
“지선아, 사랑해!”라고….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 KBS 2TV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소개되며 우리 사회에 신선한 감동을 전해준 스물여섯 살 아가씨, 이지선. 그녀는 2000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로 온몸에 중화상을 입는다. 병원에서는 가망 없는 환자로 분류되어, 살기를 바라냐고, 살더라도 사람 꼴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너무도 당당하게 그 죽음의 문턱을 넘어 환한 해바라기처럼 웃고 있다.
이지선 씨의 이러한 사연은 이미 <인간극장> 방영 훨씬 이전부터 그녀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과 잡지에서 그녀의 사연을 주목해 기사로 소개하게 된 것도 출발은 이지선 씨의 인터넷 홈페이지였다. 하지만 그 즈음, 즉 지난해 겨울부터 이지선 씨는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온몸에 화상의 흔적이 남았지만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믿음, 그 끔찍한 사고에서 목숨을 건지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시리라는 믿음이었다. 당시 이미 100만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다녀간 상황이었지만 (2003년 5월 현재 총 방문자 수는 250만을 넘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지는 않는다는 생각 또한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의 바탕에 있었다. 이지선 씨는 곧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낼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화상 1등 이지선의 희망일기 《지선아 사랑해》는 이렇게 독자들을 찾아오게 되었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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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입니다.





다음은 신문기사.


스물다섯 꽃 나이, 이지선씨는 생일이 두 개다. 하나는 엄마의 자궁문을 열고 나왔던 날이고, 또 하나는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그 곱던 얼굴을 잃었으나 새롭게 태어난 날이다.

유학을 꿈꾸던 대학 4학년, 어린이를 좋아하던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학생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한 뒤 자신을 데리러 온 친오빠의 차를 탔다. 한데 신호 대기를 받고 서 있던 그 차를 어떤 음주 운전자의 차가 덮쳐버렸다.


날벼락을 맞아 잠시 정신을 잃었던 오빠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온 몸에 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허둥지둥 동생을 차 밖으로 꺼내 옷가지를 덮어 불을 겨우 껐다. 차가 폭발한 것은 그 직후다.


2000년 7월 30일, 두번째 생일 날이 그날이다. 지선씨는 병원에 실려가는 앰뷸런스 속에서부터 가망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카맣게 탄 몸. 의사들은 실낱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가족들에게 매몰찬 한마디씩을 전하곤 했다.


그 뒤 7개월간의 입원과 11차례의 수술. 다리에서 떼어 이식한 피부는 왜 그리 당기는지 자꾸 고개를 외로 돌아가게 만들고 척추는 구부정해지고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아 어린아기처럼 침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선천적 낙천주의자라는 지선씨는 퇴원하는 날 병원 문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걸어 나가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용기있게 사는 지선씨가 자신의 홈페이지 \'지선이의 주바라기(www.ezsun.net)\'를 만든 것도 그런 낙천성 때문일 터인데, 거기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힘이 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라는 그들의 생각을 너무 솔직하게 적어놓기도 한다. 어떤 이는 지선씨의 사진에 "혐오스럽다"는 리플을 달아놓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지선씨는 그들의 표현방법이 서툴러서라고 이해하려 한단다.


책은 지선씨의 병상 기록과 가족, 새로 얻는 친구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1백만명 가까이 접속해 읽었다는 홈페이지에 실린 글과 사진에, 한국화가 하정민씨가 그림을 보태 예쁜 책 한권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미 TV 등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선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말이 꽃씨처럼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책을 보면 벼랑 끝에 서 본 사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 지선씨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식 피부가 누구보다도 잘 적응돼 새살이 돋고, 새 눈썹이 자라나는 것에도 감사를 한다.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에 멍이 든 오까(퇴원 전후 한동안 지선씨는 \'오빠\'라는 발음이 안돼 이렇게 불렀다)를 외려 도닥인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친해졌다는 개그맨 남희석씨와의 대화 한토막. "남희석:지선~의외로 뜨거운 여자야! 이지선:아뇨! 홀라당 탄 여자인걸요." 꽃같은 입술과 흠 잡을 데 없던 자태를 하루아침에 빼앗긴 여자에게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는 "지금 이 모습도 지선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거울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그는 오늘도 "지선아, 사랑해"라고 인사한다고 한다. 책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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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전 사진입니다. 졸업사진을 위해 찍은 사진과 밴쿠버에서의 사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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