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간사 통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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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쩌면 스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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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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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난히도 길눈이 어둡다. 그래서 한번 가본 길은 ‘가고 또 가고’ 여러 번을 되풀이해야 숙지하는 편이다. 한번 경험한 길은 좀처럼 잊지 않는 길눈 밝은 사람을 내가 무척 부러워하고 존경하기까지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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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 교회에 오기 전 근무했던 성남 상대원동에 위치한 교회에서도 처음 새벽기도 차량을 운행하면서 정말 아내에게만 고백한 사실이지만 도시구획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정비된 분당에서 조차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기를 여러 날 동안 반복하였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타고 다니는 차의 내비게이션을 떼어 새벽예배 운행 차량인 이스타나에 달았을까? 다행히 그 길을 잃는다는 의미는 대부분 새벽기도가 끝난 성도들을 복귀 시키고 나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교회에서는 큰 일로 여기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새벽기도 끝난 성도들을 집으로 모두 복귀 시키고 나서 혼자서 벌이는 원맨쇼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제외 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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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은 항상 성도들이 다 내리고 난 후부터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성도들이 탑승을 한 상태에서는 그분들이 경유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안내역을 충실히 감당해 주셔서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성도들이 모두 내리고 복귀하고 나서부터는 그야말로 나는 고립무원한 상태가 되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인 인간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대체로 고집이 세고 자부심이 강하고 무엇이든 혼자서 해결하려 드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가급적 타인에게 의존하려 들지 않는 습성이 있다. 다만 길을 잘 숙지 못하는 걸로 봐서 머리가 나쁜 것은 인정하겠다. - 혹시 이 글을 읽고 있을지 모르는 사무 간사로 근무하는 S집사님이 아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매주 한번 이상 담임목사님 방 청소를 하는 청소 권사님에게 담임목사님 방문을 열어줄 때마다 번호키를 외우지 못하고 S집사님께 암호를 묻고 있는 나를 속으로 ‘머리 되게 나쁘다’고 놀렸을지도 모를 일이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무엇이든 잘 숙지하지 못하는 나쁜 머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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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부분의 대한민국에 설립된 교회의 관리집사는 차량운전을 필수적인 임무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 오산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채용 공고에 ‘운전은 필수’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특히 운전 중에서도 새벽기도 운행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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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군대에서 생활하다 사회 적응 훈련을 받던 8개월 동안 성남 상대원동에 위치한 교회에서 근무를 하였다는 사실은 서두에서 밝힌바 있다. 관리집사가 유고인 상태에서 부임하여 상세하게 길을 숙지하지도 못하고 부임한지 이튿날부터 주일예배 차량운행을 하였는데 나의 길 안내는 일흔여섯 잡수신 안경 끼고 키가 다부지게 작달막한 충청도 태생 R권사님이 맡아서 해 주셨다. R권사님은 나이와는 달리 길에 대해서는 총명하고 따라서 길눈이 매우 밝았다. 부임 첫 주일 낮 운행은 R권사님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부터가 문제였다. R권사님 댁은 미금역 인근에 있는 “C”아파트이기 때문에 그 전에 분당의 갑문이라 할 수 있는 도촌동에 있는 “S”마을이라는 곳에 들러 S권사님이라는 분을 모시고 가야했다. 여하튼 “S”마을 아파트를 몇 바퀴 돌고 가까스로 온몸이 여기저기 불편하지 않은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2월 막바지 추위에 떨고 있는 S권사님을 만나서 모시고 미금역을 향하여 길눈이 밝은 R권사님을 모시러 가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새벽마다 “S”마을에서 며칠 동안 길을 찾지 못하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미금역까지 찾아가는 도중 도촌동에 사시는 그 S권사님이 길을 잘 몰라 여러 번 헤맨 적이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도촌동 사시는 그 S권사님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 인근의 지형지물도 잘 모르는 분이셨다. 버스만 탈줄 알면 주변 지형지물에 대해서는 몰라도 된다는 것이 그 권사님의 삶의 방식이었는데 실제로 그분은 잠실에 직장이 있어서 도촌동에서 잠실까지 출퇴근을 하였는데 정해진 노선버스를 타고 갈아타는 곳에서 갈아타고 하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생업을 영위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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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번은 미금역에 사시는 R권사님을 모셔다 드리고 도촌동으로 오는데 내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도촌동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일이 벌어졌다. 길을 잃은 내가 권사님께 “권사님 도촌동으로 갈려면 어디로 가야하죠?”하고 물었더니 생각이 잘 안 난다는 거였다. ‘참 나만큼 딱한 분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나마 더듬더듬 미금까지 가는 길을 가르쳐주던 그 도촌동에 사시는 S권사님이 사정이 있어서 새벽예배에 불참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과연 나 혼자서 미금역을 찾아 갈수 있을까 걱정을 하다가 혼자서도 비교적 찾아가기가 쉬울 것 같은 분당-수서간 도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가기로 작정하고 평소보다 일찍 상대원동을 출발했는데 정자 지하차도를 벗어나면 우측차선으로 빠져 고가도로 밑에서 유턴하여 우회전해야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달렸음에도 이상스럽게 미금역으로 빠져 나가는 정자 지하차도가 보이지 않아 -정자는 거기 확실하게 있었는데 내가 그 출구가 정자인지 영자인지 전혀 몰랐음- 정신을 차리고 잘 살펴보았더니 죽전을 훨씬 벗어나서 오산 쪽으로 달리고 있어 하마터면 너무 빨리 오산교회로 올 뻔하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오산교회로 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가보다- 여하튼 가까스로 차를 되돌려 더듬거리며 미금까지 갔던 적도 있다. 다행히 길 잃을 것을 염두에 두고 평소보다 10여분 일찍 교회를 출발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날은 새벽예배를 망칠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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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헤매다가 길을 완전히 숙지 한 것이 부임한지 두 달 가량이 지나고 난 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다. 그처럼 도시구획이 완벽하게 된 분당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게다가 성남을 벗어나 죽전까지 진출한다는 것이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상식이하의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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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교회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금요일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최종호 집사님으로부터 업무를 인계 받으면서 새벽기도 코스와 주일 낮 코스를 직접 순회하며 나름대로 자신 있게 길을 익혔는데 막상 혼자서 그 코스를 돌려고 드니 코스들이 얽히게 되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맨 처음 새벽기도 나오시는 분만 태우면 그 다음부터는 순순히 경유지를 알게 되어 있어 소위 첫손님만 태우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첫 손님을 태우는 곳을 못 찾아가면 어쩐다지?’ 그래서 나는 그 출발선상에 사는 운암 1단지 -당시에는 우남(운암을 소리나는대로 적으면 우남으로 발음됨)인지 좌남인지 전혀 개념이 없었음- K집사님께 다음날 새벽에 꼭 나오시라고 부탁을 하였고 확실히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물었었다. 그런데 그 집사님! 내가 스토커로 의심이 가는지 전화번호 알려주기를 주저하더니 결국은 알려주지 않고 내리고 말았다. ‘에구머니! 나 그런 사람 아닌데 ㅎㅎㅎ’ 어쨌든 다음날 새벽 자신 있게 일어나 오산 교회 부임 후 첫 번째로 혼자서 새벽기도 운행을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한전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거냐? 아니면 한 블록을 더 간 엔케이텍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 거냐?’ 내가 아는 유일한 길 시청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기둥에 붙어있어 그걸 믿고 무조건 내달렸는데 아뿔싸 시청을 잃어버렸다. 시청이 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시청은 거기 있는데 내가 시청이 앉아 있는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정표도 안 보인다. -이정표 또한 밤새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내가 이정표를 보지 못했던 것임- 어딘지 모르는 아파트 단지를 따라 잘 닦여진 주변 도로를 뱅글뱅글 돌다가 가물가물한 기억도 되살리지 못한 채 순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어떤 사거리에 당도했는데 어떤 농협 앞에 낯익은 여인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정말이지 그 집사님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니깐!’ 그 다음 코스야 여유 있게 ‘좌회전! 우회전!’ 하는 명령에 의지하여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무조건 전진할 수밖에 없었으니 길을 익히고 자시고 하는 그런 생각은 사치의 일종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첫날은 무사히 넘어가나 했는데 새벽예배 복귀시에 그만 문제가 발생하였다. 새벽예배를 올 때는 도로의 주요 축선상에 성도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어 태우고 교회로 모시고 오면 되었는데 복귀시에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연로하신 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아파트 안까지 들어가 하차를 시키는 관례에 따라 친절 운행을 하였는데 아파트를 들어가 이리저리 돌고 후문으로 나오고 하는 바람에 또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새벽예배 올 때의 역순으로 성도들을 내려주다 보니 마지막에는 첫 번째로 탔던 그 K집사님을 내려주고 교회로 복귀하려 하였는데 나는 또 윤동주의 시 속의 광경처럼 만주의 어느 벌판에 서있어야 했다. ‘어디로 가야 교회를 갈수 있나? 에라! 좁디좁은 오산에서 설마 길이야 잃어버리겠나!’ 싶어 대충 앞으로 전진 하는데 도대체 내가 아는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남으로 향하면서 ‘정남이 있으니까 정북이나 정동 또는 정서도 있을텐데...’ 하는 헛생각을 하며 전진을 하던 중간에 아무래도 거기가 아닌 것 같아 되돌아오다가 발안 쪽으로 갔다. 그리고 또한 ‘발안’은 있는데 ‘손안이나 발밖은 왜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다가 아무래도 거기도 아닌 것 같아 되돌려오면서 우측에 있는 오산교회도 발견 못하고 지나쳐 LG평택 공장 쪽으로 가다가 내 행동을 스스로 수상하게 여겨 되돌아오고 그러다 다행히 오산역을 찾게 되어 더듬더듬 교회를 찾아왔다. -목사님은 새벽부터 길 잃고 헤매고 있는 어린 양을 전혀 염려라는 단어에 가두어 두고 계신 것 같지 않았음- 그런데 그 다음날이 진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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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됐든 군인 정신만 있고 사회인이 덜 된 길치의 두려움이 엄습해 있는 상태에서 그 농협 앞까지는 필연적으로 우연하게 정신없이 찾아갔는데 이런! 큰일이 났다. 믿었던 그 K집사님이 어디로 부녀자 납치를 당했는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드렸는데 단잠에게 납치를 당하시다니 나는 순간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을 느꼈다. ‘전화번호를 알아야 전화라도 해서 억지로 길 안내를 시키지! 어디로 가야하나! 그대로 전진이냐! 아니면 차를 돌려서 가야하냐?’ 생각하다가 차를 돌려 얼핏 들은 기억이 나서 2단지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에 무게를 더 두게 되었다. ‘제발 좀 아무라도 나타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수없이 기도하며 정말 조선시대 때 새색시 걸음 걷듯이 억지로 노란차를 걸려서 데리고 가는데 주여! 감사합니다. 2단지 앞 버스 정류장에 마스크를 쓴 웬 아름다운 천사가 다른 성도들과 함께 서서 꾸벅 인사를 하고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오산 교회 교인이 맞고 그녀는 내게 천사나 다름없었다. 그러게 노란 차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고 손을 들었겠지! 그날 이후 그 천사 권사님 -어쩌면 집사님일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 생각함-이 내가 새벽예배 코스를 다 숙지 할 때 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새벽예배에 참석하여 길을 안내해 주셨다. 권사님-내 나름대로 집사님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권사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금에야 밝히지만 교회에 복귀할 때면 날마다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였다는 사실을 그 성도들이 알면 얼마나 나를 불쌍히 여겼을까? 어쨌든 새벽예배 임무완수는 분명히 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반복되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부녀자 납치 사건들이 아직도 해결이 안 된 무서운 화성에서 행방불명되지 않고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을 한 일주일 정도 반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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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 빌리지에 K집사님이 사신다. 어느 날 다짜고짜 1호차로 와서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니 태워다 달라고 하신다. 이미 차에 타신 성도님들을 이해 시켜 드리고 일단 태워는 드렸는데 어딘지 모르고 무조건 푸르지오 부근 오산 빌리지라고 한다. 나도 거기를 잘 모르고 함께 탄 성도들도 잘 모르는데 다행히 대략 어디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젊은 집사님이 푸르지오를 얼핏 본것 같다고 하셔서 조심스럽게 찾아가다 푸르지오를 발견하였고 그 아파트 앞에서 정차하여 길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오산빌리지가 어디냐고 물어 어디라는 것을 알고 빌리지 안에까지 모셔다 드렸다. 운행하는 내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 해 주실 것’이라고 그 K집사님은 누누이 나에게 막무가내로 말씀하셨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대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오산 빌리지를 찾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안수집사인 나보다도 K집사님은 신앙의 깊이가 더한 것 같이 느껴져 한편으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미상불 그 기도의 바람대로 오산 빌리지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철야예배 후에 문제가 생겼다. 예의 그 K집사님이 다시 내 차에 타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나는 교회에서 오산 빌리지 까지 가는 길을 알기 때문에 염려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다른 분들 먼저 모셔다 드리고 맨 나중에 오산 빌리지를 가겠다고 자신 있는 양해를 구하고 이리저리 꾸불꾸불 성도들을 모셔다 드리고 오산 빌리지를 찾아 떠났는데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운암 단지에서 나와 좌회전을 하고 말았던 것 같다. 고가도로를 넘고 가다보니 이게 웬 동탄? 차가 동탄 쪽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용인 고속도로 팻말이 나와서 ‘잘못 가고 있구나!’고 깨닫고 차를 돌렸다. 그러자 그 순박하기 짝이 없는 막무가내 K집사님! 눈치를 챘는지 ‘어디로 가고 있어요?’ 라고 묻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오산 빌리지 아시죠? 지난번에 데려다 줬는데......’ 운행 방향이 이상함을 눈치 챈 그 K집사님이 걱정스러운지 혼잣소리를 하신다. 내가 반대쪽으로 왔으니까 차를 돌려 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있어서 ‘염려 마세요 저녁이라 차가 좀 늦는데 지금 오산 빌리지로 가고 있으니까요’ 라고 안심을 시켜 드렸고 얼마쯤 달리니 정말로 우측에 있는 푸르지오를 찾아내게 되었고 따라서 오산 빌리지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방향감각을 잃고 헤맨 결과가 이렇듯 참담하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 K집사님 관리간사에게 납치당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상당히 불안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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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도 몇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끝내는 오산이 서서히 내 손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둘째 날부터 내게 길을 안내해주신 분이 S권사님이란 것을 지난 2월 8일 새벽예배를 돌면서 L장로님께 물어서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S권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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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난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 실시한 ‘특새’ 때 내가 운행을 책임진 곳인 동탄을 오고가면서 벌어진 또 하나의 길치 사건 때문이다. 하지만 차량부의 L집사님은 내가 미덥지 않기 때문에 특새 시작되기 하루 전 주일날 동탄 운행을 봉사하고 있는 S집사님과 함께 동승하여 길을 익히라는 명령으로 사전에 길치의 미련한 행동을 예방하려고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하셨다. 그래서 나도 내 능력을 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만사 제쳐두고 동탄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개나리 빛깔의 1호차를 봉사하시는 S집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비록 이해는 못했지만 수첩에 경유지를 꼬박꼬박 적어가면서 운행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속으로는 음흉한 미소(?)가 떠올려졌다. 내가 새벽예배 때 주로 운행하는 노란 차에는 내 승용차에서 떼어낸 내비게이션이 고정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예상대로 첫날은 헤매지 않고 보란 듯이 내비게이션 아줌마-어쩌면 아가씨일지도 모름-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임무 완수를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량 배차 문제로 내비게이션 장착이 되어 있지 않은 12인승 스타렉스로 동탄을 간 둘째 날 드디어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첫 번째 경유지인 P#을 찾지 못하고 동탄 대로를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간이 경과해도 새벽예배 수송 차량이 도착하지 않아 이상히 여긴 P# 사시는 N집사님이 전화를 주셔서 바로 코 옆에 두고 찾아 헤맸던 P# 아파트를 찾아갔던 웃지 못 할 사건이 있었던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가 없게 여겨지지만 내가 처음 운행을 나가는 곳마다 이러한 일이 반복 되는 것으로 보아 그 원인이 내가 워낙 길치이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인 열매라고 여겨진다.
그래도 나는 길치가 되기를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한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부탁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르쳐 주지 않은 그 K집사님의 염려처럼 어쩌면 스토커가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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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속에 등장하는 이니셜에 해당되는 여러분들께 고합니다. 이 글은 다분히 창작성을 띤 글이라고 생각하시고 혹 잘못되고 과장된 부분이 있더라도 마음 아파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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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선 관리간사 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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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토커.hwp (293byte)
0회 다운로드 | DATE : 2020-10-08 2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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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작성일우남단지가 아니고 발음은 우남으로 됩니다만 "운암(雲岩)"뜰이랍니다.

님의 댓글
작성일집사님 그 때는 운암이 우남으로만 보였고 그렇게 들렸었다니까요

님의 댓글
작성일오산에서 사시던 분들이 아닌 경우에 발음이 들리는 대로 우남단지라고 아시고 계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말 그대로 예전에는 구름과 바위가 어우러진 논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