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오늘의 출석부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담을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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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날 이군요.
한 달을 보내며 내 마음속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체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는 것으로 출석을 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제주도 동쪽 끝 종달샘 교회를 섬기시는 김민수 목사님의 글입니다.
글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한 달여쯤 되었을까?
보이지 않던 대바구니 하나가 마당에 놓여있는데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튼실하게 만들어진 것이라서 오일장에라도 나가서 하나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아무리 맘에 들고 값이 싸다고 해도 장식품이 아닌 한에 있어서는 쓰임새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으니 오일장에 나가면 \'과연 제대로 사용할까?\'하는 마음에 그냥 집에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들을 사용하자며 돌아서게 된다.
그런데 한 달여를 기다려도 가져가는 이가 없으니 가져갈 때까지는 그냥 저냥 사용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텃밭에 나갈 때에나 산책길에 바구니를 챙겨 다녔다.
텃밭에서는 검질(김매기의 제주 사투리)을 할 때 잡초들을 담아 버리는 바구니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식탁에 오를 채소들을 대바구니에 담으니 훨씬 그 맛이 사는 것 같아서 주로 텃밭에서 사용을 했다. 완두콩이나 상추, 아욱, 부추 등을 그 곳에 담아 가져오면 훨씬 그 맛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듯 하여 거둔 채소들이 더 입맛을 돋운다.
어제는 식물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인동초에 관한 글들이 나오는데 꽃을 따서 말리면 좋은 차(茶)가 된다기에 고마운 분들에게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대바구니를 들고 인동초가 만발한 숲길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꿀이 가득한 인동초의 향기를 맡으며 하나 둘 따다보니 바구니에는 은은한 인동초의 향기가 그윽하다.
\'아,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대바구니의 품격이 달라지는 구나!\'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는 비워져 있어야 하고, 그것을 담을 만큼 청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담지 않는 바구니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바구니의 품격이 달라지니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인동초로 바구니를 채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시간 내내 인동차를 마시며 사색을 할 일이며, 어떤 이들에게 선물을 할까 생각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라 천천히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숲 속에 있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바구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을 채우고 사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아무리 외향이 그럴 듯 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구역질나는 것이라면 썩는 냄새만 진동을 할 터이니 비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채우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대바구니는 세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만이 주는 맛은 참으로 순수한 자연의 맛이다. 오래가는 맛이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모를 대바구니, 그렇게 그것에 이것저것 담아보니 주인이 찾아간다면 오일장에 나가 안 사오고는 못 베길 것 같다. 대바구니에 담긴 채소의 맛을 알았으니 말이다.
골갱이(호미의 제주 사투리).
호미보다는 얍상한데 그 쓰임새는 참으로 다양하고, 이 골갱이는 내 손에 꼭 맞는 골갱이로 텃밭에서 검질을 할 때에도 간혹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캘 때에도 주로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약간의 차이 같은데 그 쓰임새는 천차만별이고 아주 조금의 무게 차이지만 오래 일을 하면 그 작은 무게 때문에도 일이 힘이 들기도 하고 쉬워지기도 한다.
잡초를 뽑을 때에 다른 것들의 뿌리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수월하게 김을 멜 수 있고, 바다에 나가 모래를 슬슬 긁으면 \'딱!\'하며 조개를 찾아내는 경쾌한 소리는 사방팔방 삽으로 모래사장을 헤집는 것 보다 얼마나 조개를 쉽게 찾아내게 하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만일 조금만 더 두터웠어도 그런 쓰임새로 사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골갱이와 대바구니의 자연스런 만남.
골갱이는 내 마음에 잡초 같은 것들을 뽑아내고 비우는 일을 하는 도구가 되고, 바구니에 담겨질 것은 소박한 것일지라도 누구나 보면 \'야, 참 잘 어울린다!\'하는 것을 담는 그런 바구니를 상상해 보았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담을까?\'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익명의 독자가 기사를 읽고 험한 글을 댓글로 남겼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화가 났다. 삭이면 삭일수록 자꾸만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눈으로 본 그 글의 내용이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하다.
그 정도는 각오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욕설로 그 익명의 독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차라리 내가 그 험한 글을 감당한 것이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생각은 이론적인 정도이고 이미 마음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날 새벽 무언가가 다리를 무는데 그 통증이 심해서 순간적으로 지네라는 것을 알았다. 시골에서 생활하다보니 간혹 날이 궂은 날이면 이 놈들이 어느 틈으론가 파고들어 가끔씩 우리의 보금자리를 배회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물었던 범인은 한약방에서 말려서 파는 크기 정도의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0분, 원래의 기상시간보다 20여분 당겨진 시간이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범인을 잡아 화형식을 거행했다. 다리는 물린 곳을 중심으로 부어오르고 뻣뻣해지더니 사흘 동안 통증을 느끼게 했다.
참 독한 놈이다. 전에 아내도 두 번을 물려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그 아픔이 얼마나 심했을까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파서 쩔쩔매는 나를 보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목사님이 감사할 줄 알아야지. \'아이들이나 아내가 물리지 않고 내가 물려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를 해야지 뭐 그리 엄살?\"
조금 야속한 것 같았지만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만일 아내가, 아이들이 물렸다면 내 속이 오죽했을까. 차라리 내가 물리는 것이 낫지. 감사하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면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시골로 이사온 것까지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 일을 당하고 나니 익명으로 험한 욕설을 퍼부었던 그 사람의 일도 그냥 그런 것이구나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대표로 욕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그냥 보약을 먹었다 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마음이 다스려진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미물이지만 지네에게도 미안하고, 나에게 험한 말을 했던 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이제 다시 따스한 것들이 하나 둘 마음에 채워진다. 그래, 세상은 아직도 따스하다. 살만하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는가에 따라 세상도 달라 보인다
한 달을 보내며 내 마음속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체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는 것으로 출석을 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제주도 동쪽 끝 종달샘 교회를 섬기시는 김민수 목사님의 글입니다.
글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한 달여쯤 되었을까?
보이지 않던 대바구니 하나가 마당에 놓여있는데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튼실하게 만들어진 것이라서 오일장에라도 나가서 하나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아무리 맘에 들고 값이 싸다고 해도 장식품이 아닌 한에 있어서는 쓰임새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으니 오일장에 나가면 \'과연 제대로 사용할까?\'하는 마음에 그냥 집에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들을 사용하자며 돌아서게 된다.
그런데 한 달여를 기다려도 가져가는 이가 없으니 가져갈 때까지는 그냥 저냥 사용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텃밭에 나갈 때에나 산책길에 바구니를 챙겨 다녔다.
텃밭에서는 검질(김매기의 제주 사투리)을 할 때 잡초들을 담아 버리는 바구니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식탁에 오를 채소들을 대바구니에 담으니 훨씬 그 맛이 사는 것 같아서 주로 텃밭에서 사용을 했다. 완두콩이나 상추, 아욱, 부추 등을 그 곳에 담아 가져오면 훨씬 그 맛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듯 하여 거둔 채소들이 더 입맛을 돋운다.
어제는 식물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인동초에 관한 글들이 나오는데 꽃을 따서 말리면 좋은 차(茶)가 된다기에 고마운 분들에게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대바구니를 들고 인동초가 만발한 숲길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꿀이 가득한 인동초의 향기를 맡으며 하나 둘 따다보니 바구니에는 은은한 인동초의 향기가 그윽하다.
\'아,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대바구니의 품격이 달라지는 구나!\'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는 비워져 있어야 하고, 그것을 담을 만큼 청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담지 않는 바구니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바구니의 품격이 달라지니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인동초로 바구니를 채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시간 내내 인동차를 마시며 사색을 할 일이며, 어떤 이들에게 선물을 할까 생각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라 천천히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숲 속에 있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바구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을 채우고 사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아무리 외향이 그럴 듯 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구역질나는 것이라면 썩는 냄새만 진동을 할 터이니 비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채우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대바구니는 세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만이 주는 맛은 참으로 순수한 자연의 맛이다. 오래가는 맛이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모를 대바구니, 그렇게 그것에 이것저것 담아보니 주인이 찾아간다면 오일장에 나가 안 사오고는 못 베길 것 같다. 대바구니에 담긴 채소의 맛을 알았으니 말이다.
골갱이(호미의 제주 사투리).
호미보다는 얍상한데 그 쓰임새는 참으로 다양하고, 이 골갱이는 내 손에 꼭 맞는 골갱이로 텃밭에서 검질을 할 때에도 간혹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캘 때에도 주로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약간의 차이 같은데 그 쓰임새는 천차만별이고 아주 조금의 무게 차이지만 오래 일을 하면 그 작은 무게 때문에도 일이 힘이 들기도 하고 쉬워지기도 한다.
잡초를 뽑을 때에 다른 것들의 뿌리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수월하게 김을 멜 수 있고, 바다에 나가 모래를 슬슬 긁으면 \'딱!\'하며 조개를 찾아내는 경쾌한 소리는 사방팔방 삽으로 모래사장을 헤집는 것 보다 얼마나 조개를 쉽게 찾아내게 하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만일 조금만 더 두터웠어도 그런 쓰임새로 사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골갱이와 대바구니의 자연스런 만남.
골갱이는 내 마음에 잡초 같은 것들을 뽑아내고 비우는 일을 하는 도구가 되고, 바구니에 담겨질 것은 소박한 것일지라도 누구나 보면 \'야, 참 잘 어울린다!\'하는 것을 담는 그런 바구니를 상상해 보았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담을까?\'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익명의 독자가 기사를 읽고 험한 글을 댓글로 남겼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화가 났다. 삭이면 삭일수록 자꾸만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눈으로 본 그 글의 내용이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하다.
그 정도는 각오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욕설로 그 익명의 독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차라리 내가 그 험한 글을 감당한 것이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생각은 이론적인 정도이고 이미 마음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날 새벽 무언가가 다리를 무는데 그 통증이 심해서 순간적으로 지네라는 것을 알았다. 시골에서 생활하다보니 간혹 날이 궂은 날이면 이 놈들이 어느 틈으론가 파고들어 가끔씩 우리의 보금자리를 배회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물었던 범인은 한약방에서 말려서 파는 크기 정도의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0분, 원래의 기상시간보다 20여분 당겨진 시간이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범인을 잡아 화형식을 거행했다. 다리는 물린 곳을 중심으로 부어오르고 뻣뻣해지더니 사흘 동안 통증을 느끼게 했다.
참 독한 놈이다. 전에 아내도 두 번을 물려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그 아픔이 얼마나 심했을까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파서 쩔쩔매는 나를 보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목사님이 감사할 줄 알아야지. \'아이들이나 아내가 물리지 않고 내가 물려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를 해야지 뭐 그리 엄살?\"
조금 야속한 것 같았지만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만일 아내가, 아이들이 물렸다면 내 속이 오죽했을까. 차라리 내가 물리는 것이 낫지. 감사하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면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시골로 이사온 것까지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 일을 당하고 나니 익명으로 험한 욕설을 퍼부었던 그 사람의 일도 그냥 그런 것이구나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대표로 욕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그냥 보약을 먹었다 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마음이 다스려진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미물이지만 지네에게도 미안하고, 나에게 험한 말을 했던 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이제 다시 따스한 것들이 하나 둘 마음에 채워진다. 그래, 세상은 아직도 따스하다. 살만하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는가에 따라 세상도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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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내 마음속에 인간적인 욕심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만을 담고 십습니다_아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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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우리 교회 홈피의 활성화를 위하여 참으로 정성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심 장로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저도 예수님의 마음을 담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님의 댓글
작성일우리가 누구를 존경하느냐에따라서그 사람을닮는다는 말이 잇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라가야만 하는 지체가 되길기도합니다..
님의 댓글
작성일하루하루 생활이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이 되고자 노력하고 마음의 욕심을 버리도록욕심은 끝이 없고 죄악된 생활의 연속이 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