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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전도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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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혜정
댓글 0건 조회 1,102회 작성일 05-05-20 10:16

본문

제 글은 아니구요. 제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회원으로 계시는 작가분의 글입니다. 제가 눈물 흘리며 읽은 아름다운 글이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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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정혜

결코 믿어지지 않는 사실들을 믿기까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없이 부인하고 반문하던 끝에 믿어진 사실들에 관해서 풀어나갈라치면, 몇 날 며칠 동안 이야기를 해도 모자라리라. 나는, 언젠가 좀 더 세밀하게 감정의 맥을 짚어가며 거기에 관해 풀어나가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초로 제대로 된 <영접>을 하게 했던 체험을 말하려 한다.


그것은, <일오삼 전도방법>이라고 명명되어 지는, 정재봉 집사님의 전도방법이다. 나는, 복음과 구원의 확신에 관한 스스로의 믿음에만 충일하면 그만 이라는 굉장히 편협 된 생각을 가져왔었다.


그 동안, 내 삶은 혼자서 건사하기만 해도 버거운 것이었다. 아주, 간신히 물에 빠진 상태에서 드리워진 끈을 잡듯이 살아 온 내게, 고개를 돌려 타인에게 덕을 행할 틈이 없었던 거였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내 안의 무수히 많은 내가 늘 못 살겠다며 아우성쳐대고 있었다는 말과도 관련된다. 그 수많은 자아들을 다둑거리기에도 힘겨운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자아까지 포함시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늘 궁핍하고 쓸쓸했으므로 황량한 땅을 디디고 그저 살아가기만 해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나에게 내가 칭찬을 해댈 처지였던 거였다.


언젠가 삼 년 전 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어느 승복을 입은 분-정확히 말하자면 그 분이 정말 승려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상식에 근거한 내 질문들조차도 답변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불법지식에 대해 무지했으므로-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평생의 화두가 <주어진 목숨만큼 살아가자>이라면서 밝힌 바가 있다.





주어진 목숨만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심지어, 예순과 일흔의 나이에 이른 노인들을 보면, 무조건 고개가 숙여졌다. 지나가는 노인들의 주름진 뺨을 슬그머니 눈으로 아릿하게 쓰다듬으면서 아, 저 분들은 얼마나 자살의 충동들을 물리치고 저다지도 꿋꿋하게 살아오고 있는가, 하는 따위의 감탄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내가 성가대에만 웅크리고 있다가, 올 해 들어서는 <전도대-여호수아 특공대->에 가입하게 되어 원하든 원치 않든 주일 예배 후 전도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전도대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총무라는 감투까지 쓰게 되어 전도위원장 다음의 자리에서 맹활약을 하게끔 되어진 거였다.





처음부터 힘이 나서 전도에 열정을 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가까스로 스스로를 추스리는 가운데 있던 게으른 내가 광신도처럼-열렬한 예수쟁이처럼- 앞장선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어찌되었든 주일마다 전도대원들과 함께 전도를 하러 나갔고, 가까이 있는 노인병원을 주로 가게 되었다.


주위 정보에 서툰 내가 들어선 병원은, 주로 치매나 정신병과 함께 신체적인 질환을 가진 중증의 노인 환자 분들이 있는 병원이었다. 무작정 병상마다 다가가 요구르트와 전도용지와 티슈를 건네 드리며 <반갑습니다. 예수님을 아세요?>라며 전했다. 물론, 병원 환경은 그렇게 서먹한 환경은 아니었으며, 어쩐지 나는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편안하기까지 했지만, 너무나 앙상한 노인 분들은 쳐다만 봐도 눈물이 나올 지경으로 누워 계셨다.



마침 입원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느 할머니께서 일부러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해서 그냥 누워 계시라고 하며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우리 집 양반은 몇 달 전에 천국으로 갔어. 생전에 얼마나 교회를 잘 다니던지. 나는, 뭐 왔다 갔다 했지. 뭐, 하나님 예수님은 좋은 얘기지. 그래, 알아. 알고 말고.




그리고 나는, 예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재차 여쭤보았다.

-어디 있긴. 하늘에 계시지. 하늘에 가야 만날 수 있지.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만나게 해드렸다. 그리고 찬찬히 설명을 듣던 할머니는 그제서야, 하늘에만 계신 예수님과 하나님이 아니라 마음속에 친히 와 계신다는 사실을 수용하셨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 드렸는데, 이럴 수가. 나도 모르는 눈물이 너무나 많이 흘러 넘쳐서 기도 말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그건, 정말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 눈물이 아니었는데,



아아, 전혀 의도적이지 않는 순수한 눈물이었다. 그건, 좀 이상한 기적과도 비견할 독특한 체험이었는데, 전혀 울고 싶지 않고 울 마음도 없는데 치밀어 오르는 울음이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우는 동안 느낀 것은, 하나님 곁에서 할머니의 영혼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는 작고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이었으며,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지는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된 거였다. 세상에, 이런 기괴한 그리고 은혜로운 체험을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정말이지 이 사실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내 눈물을 보던-나는 얌전히 운 것이 아니라 실로 오열을 터뜨렸다- 할머니도 숙연해지면서 같이 기도를 드렸었다. 그 일은,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틈나는 대로 뇌척수압이 상승되어 머리가 자주 아프신 그 할머니의 영혼의 평강을 위해 틈틈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오늘은, <일오삼 전도>에 힘입어 축호(逐戶)전도를 나갔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전도 방법이다. 실제 방어체제가 심한 도시만 나가도 이런 전도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반촌이다.



교회 근처의 아파트단지에 동을 정해서 집중해서 초인종을 누르며 시도하는 방법인데, 물론 이 방법을 전수해주시고 체계적인 성경지식을 이용해서 강한 용기를 불러 넣어주신 정재봉 집사님의 독특한 전도방법이다.




일오삼 전도라는 명칭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그 때쯤에 실족해있으면서 또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서 디베랴 바닷가에 소망 없는 그물질을 하고 있는 베드로 앞에 나타나 현현하시고, 그물이 찢어지게 많은 물고기 백 오십 세 마리를 잡게 하셨던 일화를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담대하고 용기가 백배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주님과 함께 한다는 확신 덕분에 떨리거나 초조한 마음은 없었지만, 자신 있고 들끓는 열정이 가득한, 뭔가 지펴 오른 상태는 아니었다.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어느 집에서는 매몰차게 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것을 그대로 경험하며 내려오면서 8층에 이르렀을 때, 너무나 쉽게 문을 열어주는 아이를 만났다.




아홉 살, 똘똘하게 생긴 유순한 남자 아이였다. 성당에 다닌다고 했지만,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은 마침 출타 중이셨고, 성당이 아니라 다른 용무로 나가신 거라고 아이가 말해 주었다. 나는, 예수님을 믿니? 라고 물었고, 아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예수님은 어디 계시니? 라고 물었고 아이는, 하늘에 계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영특해 보이는 아이의 눈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성경책을 펼치고 아이가 알기 쉽게 풀이해서 설명해 나갔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장 1절>



이 말씀부터 증거 하는 동안, 아이의 눈빛이 참으로 빛났다. 슬그머니 웃기도 했다. 성취감이 강한 아이였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에게 범상치 않는 재능을 달란트로 주셨으며, 아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지겨운 삼 십 분 동안, 아이는 편안하게 앉아라고 해도 듣지 않고 어린 다니엘처럼 꿇어앉아 경청을 했는데, 그 눈빛이 평범한 아이 같지 않았다. 그리고 영접기도문을 따라 한 후,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이제 제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세요.>라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나는 아이를 와락 안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아이가 이제 다음 주부터 주일학교에 오기로 했다.



한번 오신 하나님은 절대 떠나지 않으셔. 도균아, 네가 그 어떤 죄를 저지르더라도 말야.

2004년 3월 7일을 꼭 기억하렴. 하나님이 도균이 마음 속에 오신 날이야. 너무나 축하해.


나는, 이 말을 끝으로 아이의 집을 나섰다.




도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너무나 멋지게 역사 하신다. 워낙 내성적이고 말이 없고 타인에게 다가서기 꺼려하는 나 같은 인간을 들어 쓰시다니...



요즈음의 내 안에는 던적스런 내가 고꾸라지고, 그 자리에서 신실하신 그 분이 살아 움직이고 계신다. 도대체, 이런 경험을 단 한 마디로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3. 7. flfflv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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