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때는 밥못먹는 아이들이 많다-기사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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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8일 (월) 16:51 ? 한겨레
‘방학 때도 학교 열자’ 공부하고 밥도 먹게!
급식 절반이상 식권 배급…‘가난 악화’ 최악
‘학교 개방’ 꺼리는 교장들 참여대책 세워야
지난 15일 서울 행당동의 한 공부방에서 만난 김빛나(13·가명)양은 초등학교 6학년, 또래보다 키가 작았다. “키로 치면 우리반에서 제가 앞에서 2번쯤 될 것”이라고 김양은 얘기했다.
김양의 아빠는 술에 젖어 산다.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는데, 술을 하도 많이 마셔 2~3일만에 일자리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몸져 누웠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보기 싫어 가출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은 불규칙하고, “늘 맛 없고 별 게 없는 반찬만” 오른다. 공부방에서 먹는 한 끼가 하루 중 가장 든든한 한 끼다. 이날 공부방에선 오삼불고기와 김치, 어묵국, 감자튀김, 방울토마토가 반찬으로 나왔다. 김양은 꼭꼭 씹어가며 한 그릇을 쓱싹 비웠다. “먹을만큼만 퍼야 해요. 골라 먹어도 안돼요. 안 그러면 선생님께 혼나거든요.” 김양은 이곳 식탁에서 영양분만 얻어가는 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처럼 식사예절도 배워간다.
■ ‘결식아동’의 정의를 바꿔라= 보건복지부는 올해 겨울방학 결식아동 지원 대상을 24만명으로 잡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기중 급식지원 학생수 52만6천명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복지부 아동복지팀 신현봉 사무관은 “교육복지 증진 차원에서 급식비 부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교육부와 복지부의 급식지원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복지부의 급식지원 기준은 ‘학기 중 지원 대상자’ 가운데 ‘급식지원이 필요한 아동’으로 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방학 중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동들은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역아동센터 등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새날지역아동센터의 최선숙 대표는 “요새 쌀이 없어서 굶는 아동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한부모·조부모 가족 등의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밥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굶거나 영양적으로 불균형한 식사를 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여건에 맞지 않아 오히려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아이의 집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햄과 빵, 날짜 지난 우유, 과자 몇 개만 뒹굴고 있었다”며 “이런 아이들은 굶었다가 먹을 땐 폭식을 하게 되는 식습관 때문에 키는 작지만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얘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결식아동이나 빈곤아동에 대한 본격적인 현황 조사가 없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부 정익중 교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학대나 방임 등 여러가지 사유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거나 먹는다 해도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100만명 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단순히 언어적 의미로 ‘밥을 굶는 아동’이라고 정의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방학 때도 학교를 열어라= ‘결식아동=밥을 굶는 아동’이란 정의가 바뀌면 급식지원 방법도 달라지게 된다.
복지부의 ‘아동급식 지원실적’을 보면 일반 음식점(식권·22%)과 식품권(30%) 제공을 통해 급식을 지원하는 것이 절반 이상이다. 특히 서울시 한 자치구의 경우 지원대상 어린이들에게 모두 식권을 제공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식권 등을 통한 급식지원 방식은 한참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을 찍어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아이가 양질의 식사를 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식권 제공을 통한 급식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과 함께 밥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식사를 제공하는 통합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결식아동 지원은 아이들의 식사 뿐 아니라 정서까지 보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이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퍼져있는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관이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그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2006년 9월 현재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센터 등을 통해 급식을 지원받은 아이들은 모두 3만3659명으로 전체 1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예산확보나 지원 문제 등이 있어 시설을 늘리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인 ‘학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정 교수는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지역아동센터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은 학교”라면서 “방학 중에도 학교가 문을 열어 학습 등 복지프로그램과 급식을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방학 중 학교에서 학습과 급식을 연계한 통합 프로그램을 검토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의 배상훈 방과후학교 기획팀장은 “수요자의 선택에 따라 방학중 4시간 정도의 학습 프로그램과 함께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배 팀장은 “식사는 학교장의 선택에 따라 학교 급식을 하거나, 인근 식당과 연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방학 중 학교를 개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고 발생시 책임이 학교장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어 학교장들이 참여를 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교수는 “학교를 활용하는 방안은 효과가 큰만큼 학교장들의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라며 “뜻 있는 학교장들의 참여폭을 넓힐 수 있도록 방학 중 학교를 개방하는 교장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관 합동 급식회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던 국무조정실은 이달 중 방학중 결식아동 지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회복지 걸림돌 된 ‘풀뿌리 민주주의’
가난한 지자체 재정분담 못해 예산 못받아
아동 대신 ‘표 가진’ 노인 챙기기 우선하기도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된 뒤 사업내용이 악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0년 아동급식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04년에 겨울방학부터 방학중 중식지원 대상자는 5만6천명에서 25만명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2005년 지자체에 사업이 이관된 뒤인 올해에는 지원 대상자 수가 24만명으로 다시 줄었다.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 서울지부 백종훈 사무국장은 “경제상황이 악화돼 빈곤층은 오히려 늘어나는데 급식지원 대상자가 줄어든다는 게 말이되느냐”며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기중 급식 대상자 명단을 바탕으로 각 지자체에서 선정하는 방학중 아동급식 지원 대상자는 사실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에 한정되기 일쑤”라고 볼멘 소리가 나온다. 지적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욕’을 가난한 지방자치단체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자치구의 재정 사정과 상관없이 복지 사업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예산 분담률을 일정하게 정해놨는데, 이 때문에 빈곤층이 많은 지자체들은 국가 보조금이 주어진다 해도 사업 할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열린 ‘고령친화모델지역 정책포럼’에 참석한 지자체 단체장들은 “정부가 사회복지 사업비를 획일적인 비율로 분담시키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재정상황에 따라 분담금 비율을 조정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건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일이 현장 방문을 하면서 결식아동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형편이 된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를 확률이 높은 차상위계층 아이들이나 방임 아동 등은 방학중 급식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특히 수많은 복지 수요 중 아동 복지 문제가 후순위에 놓이는 것은 아동들에게 ‘한 표’ 행사 권리가 없어 자치단체장 등의 관심 영역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 행당동 지역아동센터 ‘조이스터디’를 운영하는 신선영(47)씨는 “선출직 단체장들은 표심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 표 행사권리가 없는 아동들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리게 마련”이라며 “사회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지자체 실시 이후 가장 큰 수혜자는 노인들이 됐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부 정익중 교수도 “고령화 문제 등에 대한 연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빈곤아동, 특히 미취학 아동의 빈곤 실태에 대한 실태조사에는 비용 지원이 잘 안 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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