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연구-처음엔 '화려한 솔로', 나중엔 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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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9일 (화) 03:04 ? 조선일보
처음엔 \'화려한 솔로\', 나중엔 눈물만…
국어사전에 ‘기러기 아빠’란 말이 실린다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함께 해외에 보낸 뒤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남성’ 정도가 될 것이다. 1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그들의 ‘일상’에 대해 탐구한 보기 드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일 한국사회사학회 등의 주최로 한양대에서 열린 학술대회 ‘교육과 시험의 사회사’에서 이두휴(李斗休) 전남대 교육학부 교수가 발표한 ‘기러기 아빠의 교육적 희망과 갈등’이다. 6개월 동안의 심층면접과 자료 수집을 통해 나온 이 논문의 내용을 근거로 기러기 아빠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애틋한 삶의 모습을 4단계로 나눠 재구성해 본다.
■제1 단계?? ‘미래’를 위해 울면서 보내지만…
“애들 가던 날… 마음 굳게 먹으며 미운 기억만 떠올리며 울지 않겠다고…. 그러나 가슴이 내려앉더라고요.”(1개월째) 떠나는 순간만큼은 눈물을 참기 어렵지만, 기러기 아빠가 되려고 결정하는 과정은 비교적 쉽게 이뤄진다. 가족의 해체라는 개념보다 ‘자녀의 미래’라는 과제가 훨씬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들이 논의한 뒤 아빠에게는 최종 선택만 남는 경우도 많다. 아빠들은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길 희망하지만 모두가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 대신 인격적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영어를 배워 취직하는 데도 유리할 것’이라는 정도의 막연한 희망에서 그치기도 한다.
■제2단계?화려한 솔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요즘은 혼자 등산 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가족들 손잡고 다니는 걸 보면 아내랑 아이들 생각이 자꾸 나기도 하고….”(2년째) 기러기 아빠들은 처음에 씩씩한 출발을 다짐하고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가기 어렵다. 대다수 한국 가장들은 집안 살림이나 자신의 건강 관리에 익숙지 않고, 주말이 되면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기 힘들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친구를 불러내기도 멋쩍다. 처자식 없이 혼자 가기 죄송하다는 자책감 때문에 명절에는 본가나 처가에 가는 대신 일부러 회사에 남아 일을 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제3단계?가족은 점점 멀게 느껴지고…
“갈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무도 안 들어주더라고요. 자기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화제로 삼아 얘기하는데… 그냥 웃고 듣기만 했지요. 사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지만….”(3년째)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가족 사이의 유대감은 점차 약해지게 된다. 아빠가 처음 떨어진 가족들을 방문했을 때는 열렬한 환대를 받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문화적 차이와 감정적 교류의 단절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제4단계?우리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내가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가족의 행복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해 아이들이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된다면 행복할까? 기쁨이나 행복도 저축이 가능할까?”(10년째)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삶의 방식을 놓고 자녀들과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 기러기 아빠들은 회의를 품게 된다. 가족 해체를 감수했던 자신들의 희생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서, 애초에 이 길을 택하게 했던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갖게 된다. “서로를 필요로 할 때 없다면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에필로그: 그래도 나에겐 자식이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한국 자녀들이 현지 학교에서 보여주는 높은 학업성취도는 기러기 아빠들에게 무엇보다도 큰 희망이자 자랑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이유 없이 공항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다 올 정도로 끊임없는 그리움을 지니고 있다가도, 오직 자녀의 성적이 올랐다는 사실에 삶의 만족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기러기 아빠들인 것이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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