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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영미씨, 2007년은 따뜻했네-시각장애인 & 도쿄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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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영대
댓글 1건 조회 1,650회 작성일 07-12-28 13:48

본문


[week&CoverStory] 씩씩한 영미씨, 2007년은 따뜻했네 [중앙일보]

시각장애인 & 도쿄대 박사
그녀의 특별한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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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엔 앞을 못 보는 사진가 나지흐 게르헤스가 있습니다. 눈으로 봐야만 찍을 수 있는 사진. 하지만 그는 아내의 눈을 빌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눈 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불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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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세상은 따뜻하다. 영미씨는 살아오며 그걸 몸으로 느꼈다.
 일본 첫 시각장애인 유학생 박사. 도쿄대 첫 외국인 장애인 박사.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고령자·장애인을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부문 1호 박사.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성취였다. 흰지팡이부터 13개월 된 ‘신비’까지 영미씨는 눈물 나게 고맙다. 일도 생활도 야무지게 해내는 욕심 많은 그를 도쿄에서 만났다.

도쿄=안충기 기자,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혼자서

 영미씨의 친구는 흰지팡이입니다. 착착 접었다가 쭉 뽑을 수 있는 5단짜리 지팡이입니다. 집을 나서면 영미씨는 지팡이를 폅니다. 끝으로 톡톡 두드려 앞이 계단인지 건널목인지 살핍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영미씨에게 지팡이는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96년, 봄바람은 대한해협을 건너오고 영미씨는 대한해협을 건너갔습니다. 후쿠오카 맹학교에 이료(理療:안마·침·뜸을 묶어 부르는 말)를 공부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아는 곳 하나 없는 일본이었습니다. 말도 글도 몰랐습니다. 전쟁 같은 3년을 보낸 뒤 영미씨는 침·뜸·안마 3개의 자격증을 얻었습니다. 말문이 트이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특수교육 분야에선 알아주는 쓰쿠바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시각장애인 침사를 보는 시선이 일본과 한국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했습니다. 석사를 마치자 박사과정에 욕심이 났습니다. 마침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가 가나자와대에서 도쿄대로 옮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하면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동양의 헬렌 켈러’라는 말을 듣는 분이었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배리어 프리는 영미씨의 관심분야였습니다. 배우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시험 쳐 보라고. 2시간 만에 답이 왔습니다. 영미씨는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생활은 끊임없이 그의 의지를 시험했습니다. 그럴 때면 더 힘들었던 지난날을 생각했습니다. 기숙사가 문 닫는 주말이면 싸구려 숙소를 돌고, 돈을 아끼려 숙소관리인의 눈을 피해 밥을 해먹고, 결핵에 걸려 격리병동에 누워 있던 후쿠오카 시절. 번개탄으로 연탄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방학이면 안마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대구에서의 대학 시절. 점자를 배우며 새 세상이 열리는 희열을 맛보던 청주의 맹학교 시절. 동생처럼 학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이를 꽉 물었습니다. 오랜 친구 지팡이를 꼭 쥐고 되뇌었습니다. 영미, 넌 잘 해왔어. 잘 하고 있어. 앞으로는 더 잘 할 거야. 영미씨는 4년간의 연구 끝에 시각장애인의 침 시술이 어떤 문제도 없다는 걸 입증했습니다. 2005년 9월 30일 학위를 받았습니다.

 전영미 박사는 지금 도쿄대학교의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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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어느 날 영미씨의 인터넷 메신저에 낯선 한국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후쿠오카 맹학교에 가서 침술을 공부하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도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서히 나빠지는 눈 때문에 7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했습니다. 답장을 하니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 남자 진지하고 생각이 곧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우리 한번 볼까요. 소식 주고받기를 한 달쯤 하던 어느 날 그가 불쑥 말했습니다. 왠지 모를 설렘에 끌려 부산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느낌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결혼할까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가 다짜고짜 제안했습니다. 놀랐지만 ‘노’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당장이요, 도쿄로 돌아가기 전에요. 그는 한술 더 떴습니다. 하필 그날 부산에 눈이 내렸습니다. 김해공항 비행기들이 날개가 묶였습니다. 사흘 밤을 지내고 영미씨는 비행기를 탔습니다(말끝에, 제가 정신이 나갔었지요, 라며 영미씨는 깔깔깔 웃었습니다). 만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전영미(38)씨와 신경호(39)씨는 식을 올렸습니다. 경호씨는 천사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여간 세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딪칠 일 하나 없어 보이는데도 둘은 자주 다툽니다. 무얼 갖고 그러는지 모르면서 토닥토닥 알콩달콩입니다.

 영미씨가 순둥이 경호씨를 집 밖으로 몰아낸 적이 있습니다. 일본어 배우러 다니던 경호씨가 친구들과 한잔 하고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술 먹고 들어왔다고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오늘은 좀 나가 있어 줄래요? 호텔비 줄게요. 못 나간다, 나가라, 몇 시간을 옥신각신하다가 경호씨가 자리를 박찼습니다. 지금껏 혼자였던 영미씨였습니다. 경호씨가 있어 좋지만 혼자 살던 시절의 호젓함이 그리울 때도 있었습니다. 늦는다기에 얼씨구나 했는데 예상보다 경호씨가 일찍 들어와 ‘황금 같은 고독’을 깨버렸던 거지요.

 하룻밤을 ‘꿀같이’ 지낸 영미씨는 다시 쾌활해졌습니다. 경호씨는 오는 봄에 쓰쿠바 맹학교에 등록합니다. 침을 배워 일을 할 작정입니다. 영미씨는 그런 경호씨가 미덥습니다.

 경호씨는 영미씨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셋이서

 요즘 영미씨의 귀가시간이 더 빨라졌습니다. 다섯 개의 이 사이로 엄마라는 말을 옹알대는 ‘신비’ 때문입니다.

 영미씨는 아이를 좋아하지만 안아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기 가진 엄마들은 혹시 아기를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하여 선뜻 내주길 꺼려했습니다. 영미씨도 그걸 아는지라 쉽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조카들도 맘껏 안아 주지 못 했습니다. 비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입니다. 앙증맞은 손과 발을 만져보고, 보드라운 뺨에 입 맞추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어 봅니다. 잠 자다가도 일어나 만져봅니다. 내 손으로 분유를 먹이며, 내 손으로 기저귀 갈며, 내 손으로 옷 빨아 입히며 자꾸 터지는 웃음을 어쩔 수 없습니다.

 비가 많이 컸습니다. 분유 먹이고 등 몇 번 두드려주면 금방 트림을 합니다. 요즘은 바깥 공기를 좋아합니다. 엄마 품에서 두리번거리며 세상 구경하다가 집에 와 포대기 끈을 풀라치면 다시 나가자고 칭얼댑니다. 얼마 전 비가 몹시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사흘 동안 집에 오지 못했습니다. 링거 바늘을 달고 있는 비 옆에서 영미씨는 밤을 새웠습니다.

 아이를 원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애 낳아서 키울 수 있겠느냐,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 영미씨는 말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요. 부잣집에 태어나면 다 행복한가요. 엄마 아빠 때문에 비가 걱정이라는 건 말하는 사람들 생각이지요. 저는 자신 있어요. 비가 커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밝게 키울 자신이 있어요.

 영미씨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자랑합니다. 비가 돌 때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이제 비는 영미씨와 경호씨 삶의 지팡이입니다.


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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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영미씨 곁에는 항상 누군가 있었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부모님은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책과 리포트 자료를 읽어 녹음해 준 친구들이 있어 대학생활은 행복했습니다. 갈 곳이 없는 날이면 불러 재워주던 분들이 있어 후쿠오카 맹학교 시절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끊이지 않는 장학금 덕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후쿠시마 교수에게서는 유쾌한 인생을 배웠습니다. 영미씨는 후쿠시마 교수를 한국에 알린 책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의 감수를 맡았습니다. 그분을 지도교수로 둔 덕에 얻은 영광입니다. 비를 보육원에 보낼 때는 영미씨가 다니는 일본 교회의 아줌마들이 아침저녁으로 내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수시로 전화하고 찾아오고 불러주는 형제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시장을 볼 때도 어느 샌가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헤아려 보니 이름만 늘어놓아도 책 한 권은 될 만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애정을 영미씨는 느낍니다. 이제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습니다. 혼자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었습니다. 셋 뒤엔 따뜻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 영미씨는 마음의 눈을 떴습니다.

 과분하게 받아왔습니다. 이제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영미씨는 압니다,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는지를. 시각장애인 모두가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영미씨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영미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수첩에 적어놓은 헬렌 켈러의 말을 다시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뭐냐고 나에게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답한다. "
 
비전은 장애를 덮고 사랑은 세상을 덥히나 봅니다.

신비네 집은 …

 영미씨는 밝다. 호호호 깔깔깔 항상 웃는다. 장애가 있어 불편한 점이 있지만 장애인이라서 득 보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부실한 한국의 장애인 정책을 지적하니, 한국에서도 시각장애인이 교수를 하잖아요, 한다. 그를 끌어온 힘은 긍정과 낙관이다.

 영미씨 부부가 살림하며 받는 도움은 우편물 읽어 주는 도우미 정도다. 인터넷으로 생활정보를 얻고 쇼핑을 한다. 인터넷 정보를 소리로 바꿔 주는 프로그램 덕분에 아쉬운 점은 없다. 컴퓨터를 옮기며 복잡한 케이블도 척척 맞춰 끼운다. 영수증통 2개가 붙어 있는 현관문 옆에는 8개의 우산이 나란히 걸려 있다. 베란다의 빨래 건조대에는 속옷·양말·겉옷이 종류별로 질서정연하다. 욕실 바닥은 머리카락 하나 없이 반짝인다. 비의 손톱도 직접 깎아 준다. 도우미도 친정어머니도 손톱을 깊이 깎아 비를 울렸지만 부부는 그런 적 한 번 없다. 스푼 5개에 온수 250mL, 분유를 타는 경호씨의 손길은 기계처럼 정확하다. 가스레인지에는 흘러 넘친 국물 자국 하나 없다. 처음 만나 영미씨가 타 준 커피를 마셨다. 두 번째 만났을 땐 경호씨가 커피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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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뭐냐고 나에게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것'이라고 답한다"  비전은 장애를 덮고 사랑은 세상을 덥히나 봅니다. -이런 따뜻한 글을 읽으면 다시금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고 웬지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내일이 아니면서도 웬지 내 가족이나 형제의 일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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