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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창업자 커넬 샌더슨의 오뚜기같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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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영대
댓글 0건 조회 1,977회 작성일 08-01-01 22:07

본문

환갑도 훨씬 지난 나이인 65세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야기 1.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슨의 이야기를 잠시 소개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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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다섯에 빈털터리가 된 커넬 샌더스는 음식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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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기발한 닭 요리법이 있는데,?이 요리법을 이용하면 매출이 늘어날거요.""

음식점 주인???? "이봐요 . 흰 양복입은 영감 당장나가요 .. "

그는 가는 곳마다 제대로 말초차 꺼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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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포기하지 않았다.?? 낡아 빠진 차로 미국전역을 횡단하며....그렇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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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여...?? 그는 1008번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1009번째 문을 두드렸을때, 그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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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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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바로 KFC 1호점 탄생한 순간이었다.?? 흰양복에 지팡이를 팔에 걸친 노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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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넬 샌더슨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대신 무언가를 할 때 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 번에는 더 잘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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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멋진 인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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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널 샌더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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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넬 샌더슨이란 분 만큼 많은 역경에 직면했던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22세 때 램프 제조 판매업을 하다 전 재산을 탕진해 버렸다.? 주유소 경영에 뛰어든 그는 39세 때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전 재산을 날려버렸습니다. 40세 때 주유소를 경영하다가 후에 식당과 모텔을 운영했습니다. 이 때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49세 때는 화재로 식당과 모텔이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여 레스토랑을 시작했고, 66세 때는 새 고속도로 건설 계획으로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으며, 또 다시 전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급기야는 하는 사업마다 망한 절망감과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커넬 샌더스는 정신병까지 앓게 됩니다.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됩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와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듣게 되어집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가432장)



?이 찬송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스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주님,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커넬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로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정신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어집니다.



샌더슨은 기도하고 힘과 지혜를 얻어 자신이 가진 11가지 치킨 양념 비법을 사 줄 식당을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1,008개의 식당이 낡은 트럭에 압력솥과 양념통을 싣고 나타난 생면부지 노인의 제안을 “당신을 어떻게 믿고 투자하겠느냐”며 거절했습니다. 그는 1,009번째 방문한 식당에서 ‘예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샌더슨은 그 식당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에 3만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KFC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는 나에게는 맛있는 치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세상 사람들이 언젠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라는 꿈을 황혼을 넘긴 나이에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척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어려움을 믿음으로 견디어내면서 결국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는 전 세계 48개국에 6000점포라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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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이 되는 실패



글쓴이: 봉서방 img_blank2.gif조회수 : 149img_blank2.gif07.11.16 14:53 http://cafe.daum.net/cgsbong/1wpf/59주소 복사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네 살 때 학업을 중도 포기한 뒤 유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농장에서 잡일을 하고 기차표 판매원으로도 취직했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했는데 군 생활도 결코 순탄치 않아 제대한 후 그는 철공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고 남부 지방의 철도 회사에 기관차 보일러공으로 취직했습니다. 이제 안정된 직장을 얻은 것같아 열여덟 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얻었지만 아내의 출산 소식과 함께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는데 불행하게도 그 사이에 아내는 그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미국 경제는 깊은 불황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였습니다.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여 법학 공부를 하였지만 먹고살기에 바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도중에 그만둬야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습니다. 보험 판매도 해보고 자동차 판매도 해 보고, 배를 사서 사업도 벌이고 주유소도 인수했지만 번번이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납치라도 해볼 생각으로 교외의 한적한 길가에 몸을 숨겼습니다. \'나는 정말 바보인가 봐. 어떻게 하는 일마다 이토록 꼬이기만 하지? 그래, 내가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라고는 이 일밖에 없어! 나쁜 짓을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면 이것만은 실패하지 않겠지!\' 하지만 풀숲에 숨어 표적이 될 만한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점점 자기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결국 납치하는 일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양심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식당 주방장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식당 앞에 도로포장 공사가 착수되면서 손님이 뜸해져 결국 식당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어느새 퇴직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빈손으로 말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절실한 염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출한 아내에게서 자신의 딸을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정말 그의 딸이 돌아왔고 그의 아내도 다시 돌아와 그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고목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때에 둥지를 털고 일어나 커다란 날갯짓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월 나오는 105달러의 연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고, 어느덧 그의 사업은 크게 번창하여 88세가 되던 해, 마침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이 사람은 바로 커널 샌더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의 창시자입니다. 그가 노후 연금 몇 푼으로 시작한 KFC가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실패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실패 연구 권위자 로버트 맥메스가 40년에 걸친 연구와 수집 끝에 1990년 설립한 실패 박물관에는 식료품에서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7만여 점의 다양한 실패작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는“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소비재 시장의 흐름이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궤적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매년 3만개 이상의 소비재 관련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이 중 80% 이상이 실패한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잘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을 향해 가는 이정표입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안 하겠지만 성공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인리히는 1대 29대 300의 법칙을 정립했습니다.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나기 전에는 29건의 경미한 재난과 300건 이상의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무수히 많은 실패의 거름으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뉴욕 브루클린에 윌리엄 리바인이란 사람은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무려 한달 만에 네 차례나 강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방탄조끼를 구해 입고 일했는데 그것을 보고 그에게 방탄조끼를 구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이 쇄도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정육점을 그만두고 방탄복 제조회사를 세웠답니다. 1950년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자신의 주요 고객들을 초청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열었답니다. 만찬이 끝나고 돈을 지급하려는 순간 사무실에 지갑을 놓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음식값을 지불하지 못해 고객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답니다. 그는 변호사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봉변당한 것을 털어놓으며 말했답니다. "현금이 없을 때 음식값을 대신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두 사람은 장시간의 연구 끝에 먼저 결제하고 나중에 상환하는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 카드(Diners Card)입니다. 다이너스 카드는 이름 그대로 맥나마라가 저녁(Dinner)을 먹다가 곤혹을 치른 후에 만든 카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혀에 침이 묻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맛을 알 수 없고 코에 물기가 없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발명가 찰스 케터링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성공한 것처럼 가장하지 말라. 둘째, 실패를 잘 활용하라. 실패를 헛되게 하지말고 거기서 최대한 교훈을 찾아라. 셋째,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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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에 시작된 전설 ‘커넬 할랜드 샌더스’

1950년 미국 어느 정신병원, 한 노인이 늦은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결심을 하고 남몰래 병원문을 나서면서 전설적인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불우했던 시절

그의 이름은 할랜드였다.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6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꽤 어려운 삶을 산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러 나간 동안, 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7살의 할랜드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10살부터 농장에 취직하여 노동일을 시작했다. 한 달에 4달러를 벌기 위하여 하루에 14시간씩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옥수수빵과 치즈로 허기를 채우며 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12살이 되자, 재혼하여 가정을 떠났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여야만 했다.

어린 시절은 불행하였지만 강직한 성격의 할랜드는 청년이 되어 꿋꿋이 그의 삶을 개척해 나아갔다. 직업군인으로 쿠바에 파견되었다. 제대 후, 변호사의 꿈을 꾸기도 했던 그는 철도노동자, 보험설계사, 주유소 경영까지 모두 고된 일들이었지만 그의 강직하고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로 열심히 살아갔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자녀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대공항과 함께 그의 나이 40세에 그는 무일푼이 되었다.

\'샌더스 카페\' 성공 그러나 계속되는 불운...

하지만 할랜드는 좌절하지 않고, 주유소 귀퉁이 작은 공간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들로 직접 요리하여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 여섯개로 시작한 카페은 입소문을 타고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45세에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넬(colonel)이라는 명예대령 칭호도 받게 되어 이후로 ‘커넬 샌더스’로 불리어지며 마을 유명인사가 된다.

그는 카페로 번 돈으로 모텔을 지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의 레스토랑과 모텔은 화재로 모두 전소되고 만다. 그 후 그는 그 자리에 142석의 대규모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다. 하지만 국가 도로사업계획으로 1년도 안되어 헐값에 레스토랑을 처분해야 했다.
아무리 재기하려고 수없이 오뚝이처럼 일어서봤지만 은퇴한 그에게 남은 것은 거듭된 실패로 인한 빚더미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사랑하던 아들을 잃게 되고, 그의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

그렇게 커넬 샌더스는 그의 나이 60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충격과 엄습하는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야속하고 미워졌다.
늘 자신의 평탄하지 못 했던 삶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를 이 땅에 살려 두시는 것은 나를 사용하시거나 아니면 나를 벌주시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해왔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었고 스스로 비관하여 목숨을 끊기로 작정한다.

밤이 오기를 기다렸던 커넬 샌더스는 늦은 밤이 되자, 아무도 몰래 병원 문을 나섰다.
어떻게 하면 부질없는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밤거리를 배외하던 그때, 그의 귓전에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예배당으로 이끌려 갔더니 한 늙은 부인이 혼자 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부인과 같이 기도하다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 울며 회개하고,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힘이 생겼다. 자살하려던 생각과 근심, 걱정, 염려,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무일푼에서 KFC 창업자로

그날 밤, 기도 중에 정신병이 다 낫는 체험을 한 뒤, 커넬 샌더스는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도 많고, 돈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65세의 그는 처음으로 받은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갖고, 자신만이 가진 달란트, 닭튀김 비법을 설파하기로 결심하고 자기의 중고 포드 승용차에 압력솥을 싣고 전국을 다니면서 그의 조리법을 소개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예순 다섯에 빈털터리가 된 커넬 샌더스는 음식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기발한 닭 요리법이 있는데,??이 요리법을 이용하면 매출이 늘어날… … … ”
“이봐요. 흰 양복을 입은 영감. 당장 나가요.??우린 지금도 잘 하고 있다오”
가는 곳마다 제대로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낡아빠진 차로 미국전역을 횡단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어떨 때는 돈이 떨어져 요리샘플을 뜯어 먹으며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
그렇게 하기를 2년.

무려 1008번의 퇴짜를 맞고서야 결국 옛 친구 피터 허먼의 레스토랑과 치킨 한 조각에 4센트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첫 계약을 성사시킨다. KFC 1호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치킨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피터 허먼은 얼마 후 200개의 점포를 운영하게 되었고, 커넬 샌더스 또한 꾸준히 승용차 방문 영업을 통해 프랜차이즈점을 폭발적으로 늘려갔다.
그리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현재 KFC는 세계 약 80여 개국, 1만3,300점이 넘는 매장을 구축하는 유례없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흰양복에 지팡이를 팔에 걸친 노신사 커넬 샌더슨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대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다음 번에는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 커넬 샌더스
커넬 샌더스는 75세에 다른 사람에게 회사의 운영을 넘기고 남은 평생을 구제와 복음전파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를 오랜 기간 연단하시고, 여러 번에 걸쳐 그의 목숨을 구해 주셨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재산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 사실을 간증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갑자기 부자가 됐어.\'라고들 하는데요,? 글쎄요....? ... ...?
하지만, 이제 저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 되는 길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수많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많이 주었다. 물론 담배 피우거나 술 마시는 청소년들에게는 한 푼의 장학금도 주지 않았다.
모든 생애 동안 커넬 샌더스는 고상함과 예의 바름, 근면과 성실, 애국심,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려고 애썼다.

“어릴 적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갔어요.??2마일 반이나 되는 길을 걸어야 했죠.” 이 영향인지, 그는 인디애나에 그의 경건했던 어머니를 기념하며 작은 시골 교회를 지었다.
커넬 샌더스는 교단에 상관없이 교회를 사랑했고, 어느 누구도 그보다 더 교회를 사랑한 사람이 없을 만큼 교회에 애착을 두고 있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의 비장의 음식 조리법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다고 말해 주곤 한다.??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커넬 샌더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늦은 나이에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여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써 소개되고, 존경 받고 있으며 특히
그의 간증은 국내에서도 여러 모양으로 회자되며 많은 성도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고 있다. 전세계 KFC매장 문 앞에 흰 양복에 지팡이를 팔에 걸치고 웃으며 서 있는 노신사 커넬 샌더스의 모습은 단순한 기업홍보의 수단을 넘어선 우리 모두의 삶의 희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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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 빠진 중고 자동차 시보레를 몰며 사회보장 혜택 105달러로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맛있는 치킨을 만드는 11가지 양념 비법을 사 줄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함께 동업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찾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양념한 치킨이 맛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양념 비법만을 보고 거액의 돈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Yes\'라는 단 한마디의 말을 듣기 위해 천 아홉개의 레스토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천 아홉번 째 그는 드디어 \'Yes\'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바로 패스트푸드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KFC의 창시자 커넬 샌더슨이다.

현재 KFC 체인점은 전 세계 100여국에 3만 개 이상의 매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매 년 20억개 이상의 치킨을 팔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KFC 체인점 앞에는 따뜻하고 넉넉한 인상을 가진 할아버지 커넬 샌더슨의 형상이 실물 모형 그대로 서 있다.

커넬 샌더슨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월 2달러를 받으며 농장 인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자동차 페인트공, 보험 외판원, 타이어 영업사원 등의 일을 했다. 그러다 40세가 되던 해에 켄터키주의 코빈이라는 마을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그가 만든 닭튀김은 독특한 양념으로 맛을 냈고 압력솥에 튀겨 느끼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 고속도로가 다른 곳에 뚫리면서 식당이 기울기 시작했다. 손님 수가 점점 줄어들자 결국 식당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때 커넬 샌더슨의 나이는 65세였다. 65세! 이제 인생의 황혼이었다.

젊은 날에 지겹도록 일도 했고, 부족하지만 사회보장기금이 나오고 있었다. 그걸로 남은 생애를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커넬 샌더슨은 자신이 정부에서 주는 빈민구호금 따위나 타 먹으면서 구질구질하게 생을 이어갈 만큼 약하거나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어! 손님이 내게로 오지 않는다면 내가 손님에게로 갈 것이다!" 커넬 샌더슨은 자신에게 소리쳤다.

1950년 커넬 샌더슨은 식당을 처분하고 남은 조금의 돈과 실업수당을 모아 트럭을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압력솥과 양념을 싣고 미국 전역의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치킨 맛에 투자해 줄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자동차에서 잠을 자고, 주유소 화장실에서 세수와 면도를 했다.

그리고 천 열덟번 딱지를 맞고 천 아홉번 째 \'Yes\'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Yes\'라는 말 한마디로 커넬 센더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먹는 치킨 레스토랑 KFC 체인점의 전설이 되었다.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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