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씨 김현숙은 개콘의 “출산드라”로 떴다. 이 코너의 컨셉은 요즈음 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의 획일화된 미인 기준에 대해 풍자하는 것이었는데, 비판만 하는 것보다는 보탬이 되는 메시지라도 주고자 하여 시작한 출산장려, 자연분만, 모유수유의 구호 등이 오히려 더 부각이 되어 한 때 싱글이지만 출산장려운동의 MC, 자연분만촉진운동의 홍보위원 같은 것의 행사섭외 일순위였다. 그리고 “출산드라”를 우연히 본 김용화 감독의 눈에 띄었고, 개그우먼이었지만 연극영화과 출신에 연극과 “넌센스 잼보리” 등 뮤지컬로 다져진 배우라는 점이 감안이 되어 약 7백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미녀는 괴로워”에 오디션도 없이 주연보다 먼저 캐스팅되었다고.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아버지를 여읜 상처로, 누구 아빠얘기만 나오면?혹시 아빠 얘기를 물어볼 까봐 지레 겁을 먹어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동시에 자기 주장도 확실해서 장남답게 일찍 철이 든 오빠와 걸핏하면 충돌하였고, 그럴 때마다 신체적으로 우위인 오빠에게 얻어맞기 일쑤였지만 울어봐도 아무도 달래주는 사람조차 없었고, 아빠가 없는 것에다 가난한 것 등 온통 주위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뿐이라, “왜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며 밖으로만 나돌게 되었다.?
?
그러던?중 담임선생님이 뜬금없이 12살짜리 아이들한테 자신의?자서전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셨는데, 이것이 그녀의 삶에 큰 Turning point가 되어버렸다. 그 날도 예외 없이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본 영화에서 약장수의 “새가 왜 떨어졌냐? 일이 없어서? 아니야. 뭐가 필요해서? 아니야. 영양실조야! 이 약 한 번 먹어봐” 하는 무성 영화시대의 변사식 말투가 너무 재미있어 다음 날 학교에서 발표하면서 그 말투를 흉내내었더니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이 일이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학교에서 자신감을 얻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 후 그녀의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당연히 학교생활이 즐거워졌고, 개그맨들이 아이디어를 짜서 공연에 임하듯이, ‘내일은 어떻게 하면 애들을 웃길 수 있을 까?’를 매일 고심하면서 훗날 개그우먼이 될 훈련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그런 노력으로?그녀의 인기는 치솟아, 전교행사하면 김현숙이었고, 선생님들께서 1년 365일 중에 축제기간 단 이틀을 위해 학교에 다닌다고 비아냥거리실 정도로 학교축제에서 빠져서는 안될 명물이 되어버렸고,? 당시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다니던 교회의 촌극도 접수하면서 부산해운대 일대의 교회들에서도 일약 저명인사가 되었다.
?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미술, 음악도 좋아했지만 이를 모두 아울러 할 수 있는 종합예술인 연극에 필(FEEL)이 꽂혀 동아리에 들어가서 연기실력을 연마했고,? 내친 김에 연기영화를 전공하려고 일찌감치?작정했다.? 하지만 전도사이셨던 홀어머니께서 가장이라 집안 사정이 뻔해 연기학원의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아르바이트로 유선방송 전화상담원,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 온갖 궂은 일들을 해야만 했는데, 얄궂게도 그녀가 일하는 음식점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어 돈 안들이고도 살이 저절로 빠지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 때 운동을 위해 걷는 것과 차비가 없어 걷는 것의 차이를 알겠더라고. 하지만 꿈이 있었기에 일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막상 연기자가 되어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연기해 보니 몸소 체득한 직접경험과 그렇지 않은 간접경험의 차이는 실로 큰 것이었다.? 따라서 연기 생활에 밑거름이 될 산교육을 시키려고 어린 나이부터 버겁게 시련을 주셨다는 생각이 드니, 시련에 대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그 때부터는 원망 대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늘 “긍정”이라는 안경만을 쓰고, 살아가게 되었다.
?
그리고 원하던 대로?연영과에 진학했고, 마침 KBS TV의 전국 캠퍼스를 돌며 장기를 가진 학생들을 찾아 소개해주는 "갈갈이" 박준형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팀이 학교에 촬영을 오게 되었다.?과대표라 1시간 정도 독무대로 장기자랑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좋게 본 피디와 박준형이 급캐스팅 제의를 했지만 자신은 그냥 연극이 좋고, 방송을 하더라도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더니, 남들은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일이 있은 후?착실히 내공을 쌓아 6년 후 서울에서 우연히 김지혜랑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후에 남편이 된 박준형에게 좋은 평을 해주어서인지 그가 급히 찾아와 계약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 때도 역시 연기자가 꿈이었기에 연기자 이전에 개그우먼이 먼저 되면 이미지가 고착화 될까봐 약간은 망설였는데, 기도하다가 개그우먼에서 연기자가 되더라도 사람들이 가지게 될 고정관념에 매여 미리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지혜를 주셔서 개그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고,?머지 않아?꿈꾸어 왔던 대로 영화, 드라마의 연기자로의 변신도?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
자칫 연기 공부를 다 하기도 전에 개그를 하겠다고 선뜻 따라 나서지 않고 내공을 쌓는 기간을 가지는 지혜를 주셨기에 지금은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것이며, 또 본의 아니게 먼저?자신의 이름을 알린?개그를 통해 원해 왔던 다른 길도 어렵지 않게 열어주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자신의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고, 객관적으로 경제적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자신을 이만큼 높이고 써주시는 것에 그저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라고.
http://blog.daum.net/spacetrip/6957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