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최첨단 문명사회라는 미국에서 수백 년 째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과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판 청학동, 아미시 사람들 얘기인데요, 18세기 초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래 은든 생활을 해온 이들이지만 최근에는 문명과 조화를 이루려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인 오늘은 정인석 순회 특파원이 아미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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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주의 한 농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새벽공기를 가르는 마차들의 말발굽 소리가 평화로운 아미시 공동체의 새벽을 깨웁니다.
전기와 자동차, 수백 년을 문명과 차단한 채 18세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들, 아미시 사람들의 문명에 대한 거부는 외지인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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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아미시 주민 : "우리는 종교적으로 외부사람들이 여기 와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는 지를 TV로 방송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전 8시, 아미시 어린이들의 등굣길, 취재진을 목격한 어린이들이 하나 둘 얼굴을 가리기 시작합니다.
아미시 특유의 스쿠터를 탄 어린이는 어느새 복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호기심을 보이던 한 어린이도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끝내 얼굴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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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아미시 어린이 : (이게 뭐죠?) "도시락이요."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아마 과자나 샌드위치 일거예요." (학급 인원이 몇 명이죠) "24명요."
학년 전체가 한 교실에서 교육받는 이른바 원룸 스쿨, 학교 교육이라곤 여기서 받는 8년이 전부지만, 아미시 사람들은 이 과정을 거쳐 공동체의 삶을 시작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최소주의와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이들의 주된 생업은 농업입니다.
트랙터가 아닌, 여전히 말과 노새를 이용하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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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다니엘 킹 : "밭에 거름을 뿌리고 있어요. 구덩이를 파서 소똥을 한 데 모아놓거든요. 우리는 축산농가인데 구덩이가 차면 거름으로 씁니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무공해 유기 농법, 입소문이 나면서 이들이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은 퀼트, 목공예 가구와 함께 아미시 마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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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노레다 포츠(쇼핑객) : "신선한 유기농 채소들 때문에 오는데요, 특히 저는 무공해 아몬드를 좋아해요. 다른 곳에 비해 이곳이 가격도 매우 좋은 편이고요."
전기와 자동차가 없는 이들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취재진은 직업이 기계공인 한 아미시의 협조를 받아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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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안녕하세요?) "네"
나이 서른아홉에 벌써 자녀가 여덟인 존 킹 씨, 그의 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지하실의 전구입니다.
모양부터 특이한 이 전구 아닌 전구는, 전기가 아닌 프로판 가스로 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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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존 킹(아미시 기계공) : (어떻게 작동하는거죠?) "프로판 가스통이 밑에 있거든요."
겉으로 봐선 일반 세탁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세탁기는 압축 공기를 동력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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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존 킹 : "이 벽 뒤 탱크에 있는 압축 공기가 선을 따라 밀고 들어오거든요."
마당에 발전 시설까지 갖춘 존 킹 씨는 이 같은 대체 에너지를 활용해 말 편자와 마차 등을 만들어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정해진 규율을 지키면서도 대안을 찾는 집단의 지혜를 통해 아미시 공동체는 \'느림과 무소유\'의 정신을 수백 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유럽 재 침례교파의 후손인 이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북미 대륙에 집단 이주한 것은 지난 18세기 초, 현재 랭카스터에만 2만 5천 명, 미국 전역에 20만 명이 거주하는 이들은 여전히 일요일이면 모든 일손을 놓은 채 온종일 교리를 익히며 종교 망명자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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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아미시 청소년 : (일요일엔 주로 뭐하죠?) "설교를 들어요." (학생인가요? ) "나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 교회의 정식 회원이 아니에요."
근면과 검소, 성서에 대한 절대복종, 이들의 종교 지침에는 옷차림과 마차의 색깔은 물론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 등 생활 전반의 원칙들이 세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외지인과의 결혼은 물론, 피임과 낙태가 금지되고, 이혼을 하면 공동체에서 추방됩니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아미시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적용됩니다.
만 16세에서 20세까지 청소년들에게는 비교적 자유롭게 문명과 접촉하며 바깥세상을 엿볼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됩니다.
이른바 럼스프린가 기간, 공동체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단하기에 앞서 각종 탈선이 용인되는 시기입니다.
또 이성 교제가 허용돼 상당수가 이 기간 평생의 반려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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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사무엘 프랭크 : (결혼했어요?) : "아직 안 했어요." (친구들 얼마나 참석했어요?) "20명요." (20쌍요?) : "?네."
늦은 밤, 도심에 나와 데이트를 즐기고, 담배까지 피우는 아미시 청소년들, 하지만, 만 20세 결단의 순간 이들의 90% 이상은 다시 아미시로서의 삶을 선택합니다.
풍부하게 사는 것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온 아미시 사람들, 그러나 일방적으로 문명을 거부만 해온 이들의 삶에도 최근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가장 큰 동인은 가구당 평균 자녀 수가 8.5명, 20년마다 두 배로 늘 정도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율입니다.
삶의 터전인 농지가 부족해지면서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전업을 하거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사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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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패티 센세닉(아미시 골동품 가게 주인) : "집 밖에서 퀼트 파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통조림 제품이나 빵도 팝니다. 남성들은 건설 근로자 일도 하고요."
최근 이 마을에 전화 설치가 제한적이나마 허용된 것은 가장 상징적인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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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존 킹(아미시 기계공) : (전화 오면 받을 수 있어요?) "아니요." (밖으로 걸기만 한다는 거죠?) "예."
자동차 소유는 금지돼있지만, 아미시 택시가 등장할 정도로 제한적인 탑승이 허용됐고, 산부인과에 한해 일반 병원 이용도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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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마라 오도넬(랭커스터 카운티 관계자) : "물론 항상 도전이 있죠. 하지만 아미시 사람들은 매우 믿음이 강합니다. 5분 만 운전하면 큰 도로와 큰 상점이 있지만 그들은 항상 아주 소박한 시골풍경으로 돌아오는 거죠."
1980년대 중반,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면서 처음 세상에 소개된 뒤, 아미시 마을은 점차 은둔지에서 관광지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또 자급자족의 기반이 흔들리고 외지인과의 접촉이 늘면서 문명의 유혹과 압박도 그만큼 거세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격리하는 방식으로 300년의 전통을 고수해온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문명과 공존을 모색하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더 힘든 과제가 이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않는 아미시 사람들이지만 우리보다 더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물질문명이 삶의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된 이 시대에 아미시가 던지는 교훈이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